아프리카의 고산국가 레소토에서는 매년 열리는 ‘모리자 축제(Morija Arts & Cultural Festival)’를 통해 문화유산을 기리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확인합니다. 이 축제는 음악, 무용, 전통 복식, 조상 숭배, 대지의 예술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영성과 자연, 공동체의 혼이 만나는 거룩한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강렬한 북소리와 춤, 노래가 울려 퍼지는 이 축제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삶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문화적 제의입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 위의 신성한 축제
아프리카 대륙 남부, 해발 1,000미터 이상의 고원지대에 자리한 레소토는 ‘하늘에 가장 가까운 나라’로 불립니다. 이곳에서 매년 가을이 되면 하늘과 인간, 조상과 대지가 만나는 특별한 축제가 열립니다. 바로 ‘모리자 축제(Morija Arts & Cultural Festival)’입니다. 수도 마세루에서 가까운 모리자 지역은 레소토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로, 1800년대 선교사들이 정착한 이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 지형을 만들어냈습니다. 모리자 축제는 단순한 문화예술 행사 그 이상입니다. 이는 바수토(Basotho) 민족의 정체성과 공동체 유산을 회복하는 신성한 장이며, 조상의 넋을 기리는 제의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참여자들은 전통 복식을 갖추고,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 노래, 춤을 통해 자신들의 뿌리를 재확인합니다. 그들은 축제를 통해 과거와 현재, 인간과 신, 공동체와 자연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존재적 진실을 경험합니다. 이 축제는 레소토 정부의 후원 아래 매년 열리며, 국내외 수천 명의 관광객과 예술가들이 모여듭니다. 특히 바수토족의 상징인 ‘바솔로 모자’와 ‘담불라 담불라(검정 담요)’를 착용한 참가자들의 모습은 전통과 정체성의 시각적 상징으로 큰 인상을 줍니다. 이러한 장면은 단지 미적 표현이 아닌, 조상에 대한 존경과 자연에 대한 겸손, 공동체에 대한 연대감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철학입니다.
춤과 북소리에 살아나는 바수토 민족의 혼
모리자 축제의 핵심은 ‘움직임’입니다. 축제가 시작되면 광장과 거리, 언덕과 골짜기가 모두 하나의 무대가 됩니다. 이곳에서 바수토 민족의 전통 춤과 음악이 펼쳐지는데, 특히 남성들의 ‘인디라(Inthlare)’ 춤은 땅을 울릴 듯한 발 구르기와 정교한 손동작, 절제된 에너지로 구성되어 그 자체로 자연과의 대화를 상징합니다. 이 춤은 단지 무용이 아닌, 조상과 정령에게 드리는 기도이자 헌정입니다. 음악은 대부분 북과 호른, 전통 현악기 ‘라카디(lekadi)’로 연주됩니다. 흙먼지가 일며 울리는 북소리는 대지를 깨우는 듯한 강렬한 진동을 일으키고, 이는 곧 신성한 리듬으로 바뀝니다. 이때 무용수들은 흰 천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조상의 이름이 적힌 띠를 목에 두르고 춤을 추며 무아지경에 이릅니다. 그 모습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영혼의 시간’으로 진입하는 의례적 순간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또한 여성들의 ‘마호투(Mahoutu)’ 합창은 축제의 정서적 중심을 이룹니다. 그들은 과거 여성 조상들의 삶과 인내, 사랑과 헌신을 노래로 전하며, 관객들은 눈물과 웃음으로 응답합니다. 노래는 공동체의 기억을 되살리는 매개체이자, 미래 세대에게 전해야 할 유산이 됩니다. 축제는 지역 장인들의 수공예 시장, 전통 음식 시식, 구전 설화 낭송, 어린이 민속놀이 등으로 이어집니다. 모리자 박물관은 이 시기에 특별 전시회를 열어 레소토의 고대 역사와 예술작품을 소개하고, 젊은 세대에게 문화의 맥을 이어줍니다. 그들은 단지 보고 듣는 것을 넘어, 직접 체험하고 만들며 문화를 ‘사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기억과 정체성을 노래하는 축제의 힘
모리자 축제는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기억의 축제’이며, 정체성과 공동체의 힘을 재확인하는 ‘존재의 제의’입니다. 이 축제를 통해 바수토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다시금 되묻게 됩니다. 이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문화적 뿌리를 심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축제는 교육적인 의미가 큽니다. 젊은 세대는 축제의 전 과정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전통을 배우고,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습니다. 축제는 학교가 될 수 없었던 땅 위에서 열리는 하나의 살아 있는 학교이며, 교과서에 적히지 않은 진짜 역사를 가르치는 장입니다. 레소토의 모리자 축제를 지켜보는 일은 단지 이국적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깊이와 넓이를 체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이며, 정체성은 연결 속에서 빛을 발합니다. 모리자의 북소리와 춤, 노래, 예술과 음식, 기억과 의례는 모두 그 연결의 언어입니다. 이 축제는 바람처럼 스쳐가는 이벤트가 아니라, 삶의 뿌리를 붙들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절실한 외침이자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 외침과 기도는 오늘도 레소토의 고원 위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