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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을 잇는 카자흐스탄 나우르즈, 유목 전통의 재탄생 (정체성,전통,부활)

by clickissue 2025. 7. 28.

하늘과 땅을 잇는 카자흐스탄 나우르즈, 유목 전통의 재탄생 (정체성,전통,부활)

카자흐스탄의 나우르즈(Nauryz)는 단순한 새해맞이 행사를 넘어, 유목민의 정체성과 역사,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철학을 담은 삶의 축제입니다. 초원 위의 유르트에서 펼쳐지는 전통음식, 음악, 경마, 팔씨름과 같은 민속놀이까지, 나우르즈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문화의 장이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상징하는 유목적 세계관의 표현입니다.

초원의 봄, 나우르즈로 새해를 맞이하다

카자흐스탄의 대지는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가신 뒤에도 쉽게 봄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해마다 3월 21일이 되면, 광활한 스텝 지대는 일제히 생명의 기운으로 물들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 이 날은 바로 카자흐 민족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온 전통 새해맞이 의례, 나우르즈(Nauryz)의 날이다. '나우르즈'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새로운 날'을 뜻하며,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기념되는 봄의 시작이자 생명의 부활을 알리는 절기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의 나우르즈는 단지 달력상의 새해를 뜻하지 않는다. 이는 유목민이 자연과 함께 살아온 철학, 정체성, 그리고 공동체적 연대를 확인하는 장이며, 인간과 자연, 조상과 후손이 함께 숨 쉬는 문화의 축제다. 전통적으로 유르트(yurt)라 불리는 이동식 천막이 초원 위에 설치되고, 가족과 친지, 마을 전체가 모여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나우르즈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변화가 아니다. 이는 삶과 죽음, 끝과 시작, 겨울과 봄이라는 순환의 흐름을 상징하며, 이 시점에 맞추어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을 씻어내고 새로운 다짐을 한다. 집을 청소하고, 이웃과 화해하며, 가난한 이웃에게 음식을 나누는 등 나우르즈는 곧 정화와 재생의 시간이다. 카자흐 민족에게 있어 이 축제는 단순한 기쁨이 아닌, 공동체적 윤리와 삶의 미학을 되새기는 계기다.

유목 전통과 공동체 정신이 살아 숨 쉬는 현장

나우르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초원 위에는 다채로운 전통 유르트가 세워지고, 각 유르트는 자신들의 가족 또는 지역 문화를 자랑하듯 아름다운 자수와 직물, 민속 공예품으로 꾸며진다. 방문객들은 유르트마다 들러 나우르즈 코제(Nauryz Kozhe)라는 전통 음식을 나눠 먹는다. 이 요리는 삶은 고기, 곡물, 유제품, 채소 등을 혼합한 것으로, '일곱 가지 재료'로 구성되어 조화와 풍요, 가족의 단합을 상징한다. 축제의 중심에는 전통 스포츠와 민속놀이가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경기는 말 위에서 벌어지는 경마와 ‘코쿨 파르’(Kokpar)라는 스포츠인데, 이는 염소 사체를 두고 두 팀이 다투며 기민함과 용맹함을 겨루는 경기다. 이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유목민의 기백과 전략적 지혜를 표현한 전통의 일부다. 또한 ‘바사쿨투’(Basaqurtu)라 불리는 팔씨름 경기, 활쏘기, 줄다리기, 대장장이 시연 등도 이어진다. 이 모든 활동은 카자흐스탄 민족의 역사적 삶의 방식을 현대에 되살리는 장이자, 세대 간 문화 전수를 목격할 수 있는 현장이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전통 악기인 돔브라(Dombra) 연주와 민요를 배우며,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뿌리를 인식하게 된다. 나우르즈는 또한 시와 이야기, 음악의 축제이기도 하다. 아키인(Akyn)이라 불리는 전통 시인들이 등장해 즉석에서 운문을 짓고 서로 주고받으며 언변과 지혜를 겨룬다. 이들은 조상들의 이야기를 되살리고, 공동체에 웃음과 교훈을 안긴다. 이러한 공연은 문화적 지식이 책이 아닌 언어로, 몸으로, 소리로 전해지는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기도 하다.

나우르즈, 잊혀지지 않는 정체성의 숨결

카자흐스탄의 나우르즈는 단지 과거의 유산을 박물관처럼 재현하는 축제가 아니다. 이는 현재에도 생생히 이어지고, 미래로 확장되는 ‘살아 있는 유산’이다. 스텝의 바람 속에 실려오는 돔브라의 울림, 유르트의 환한 천막 안에서 오가는 이야기, 함께 나누는 음식과 웃음은 모두 삶의 일부분이다. 나우르즈는 해마다 돌아오지만, 그 의미는 해마다 깊어진다. 현대 도시화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도 이 축제가 강하게 살아남은 이유는, 단지 전통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세계관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우르즈는 자연과 공존하고, 이웃과 화해하며, 조상과 연결되는 삶의 태도를 상징한다.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단절과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인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아이들은 이 축제를 통해 자기 민족의 뿌리를 배우고, 어른들은 잊고 있던 공동체의 따뜻함을 되새긴다. 춤과 노래, 스포츠와 요리, 시와 이야기—all in one—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커다란 울림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나우르즈가 가진 힘이며, 이 축제가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이유다. 나우르즈는 카자흐 민족의 새해이자, 인간 존재의 근원을 되묻는 날이며, 현대 세계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정체성의 숨결’이다. 봄은 언제나 다시 오고, 나우르즈 역시 그렇게 우리의 삶 속으로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