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태평양의 여성 신전, 팔라우 ‘보이봉 참축제’의 지혜와 노래

by clickissue 2025. 7. 27.

 

태평양의 여성 신전, 팔라우 ‘보이봉 참축제’의 지혜와 노래

팔라우의 ‘보이봉 참축제(Bai-bong Cham Festival)’는 여성 중심 공동체의 지혜, 평화, 그리고 자연 순환을 기리는 전통 행사입니다. 고대 여성회의소(바이) 앞에서 펼쳐지는 의례와 노래, 해초 염색 의상, 고래전설 가면극, 그리고 달주기 제사가 어우러진 평화와 조화의 축제입니다.

태평양의 심장,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다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팔라우는 아름다운 바다와 풍부한 해양 생태계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문화적 유산은 ‘여성 중심 공동체’의 전통이다. 특히 고대 팔라우 사회에서는 여성 원로들이 마을의 질서와 균형을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며, 이들의 지혜와 협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보이봉 참축제(Bai-bong Cham Festival)’는 바로 이러한 전통을 기리는 팔라우의 대표적인 축제로, 매년 음력 3월 보름 무렵, 달의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 시기에 열린다. ‘보이봉’은 ‘바이(bai, 전통 여성회의소)’에서 울리는 ‘노래’ 혹은 ‘기도’를 의미하며, ‘참(cham)’은 조화, 균형, 평화를 뜻하는 단어다. 이 축제는 단지 여성만의 행사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여성의 지혜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집합적 의식이다. 남성은 조율자이자 연주자이며, 아이들은 전승자이며, 노인은 기억의 보관자다. 모두가 그날은 ‘바이’ 앞에 모여, 과거의 지혜를 되새기고, 미래의 평화를 약속한다. 팔라우인들에게 ‘보이봉 참’은 문화가 살아 있는 순간이다. 해초 염색 의복, 전통 나무북, 뱀장어 제물, 달빛 아래의 합창까지. 모든 것이 자연과 호흡하고, 공동체와 울리고, 기억과 연결된다. 이 축제는 소리 없이 울리는 하나의 성전이다.

바이 앞에서 피어난 노래와 평화의 의식

‘보이봉 참축제’의 핵심은 ‘바이’에서 펼쳐지는 의식과 공연이다. ‘바이’는 팔라우 전통 건축양식의 여성 회의소로, 가로세로 7~10미터 크기의 목조건물이며, 벽에는 공동체 전설과 여성 영웅들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축제 전날, 여성들은 바이 안에서 밤새 찬가와 기도를 올리며, 달맞이 제례를 준비한다. 본격적인 축제는 이튿날 새벽, ‘달향(Cham Ekol)’이라는 향 연기와 함께 시작된다. 여성 원로들이 해초로 염색한 푸른 가운을 입고 등장하여, 뱀장어와 코코넛, 타로뿌리를 올린 제물을 들고 제단 앞에 앉는다. 그들은 천천히 합창을 시작하는데, 이 노래는 ‘바이본가(Bai-bong Ga)’라 불리며, 조화와 순환의 원리를 노래한 구전 찬가이다. 이후, 마을 아이들이 나무 가면을 쓰고 ‘고래와 조개 여신’의 전설을 재현하는 가면극을 펼친다. 이 전설은 바다의 평화를 위해 희생한 여성 영혼의 이야기로, 팔라우인들의 자연 보호 정신을 상징한다. 아이들의 공연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세대 전승의 장이자 공동체 교육의 일부다. 중앙 무대에서는 남성 연주자들이 대형 나무북 ‘덩덩북’을 두드리며 장대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 소리는 바다와 땅, 달과 인간을 잇는 리듬이며, 모두가 그 안에서 몸을 흔들고 노래하며 하나가 된다. 축제의 절정은 ‘달빛 의식’이다. 해가 진 후, 모두가 다시 ‘바이’ 앞에 모여 달을 바라보며 손을 잡는다. 달빛 아래서 원형으로 선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한 해의 무사와 다음 세대의 평화를 기원한다. 이 순간만큼은 어떤 말도 필요 없다. 눈빛과 리듬, 마음의 울림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지혜는 기억 속에서 피어나고, 축제는 노래로 남는다

‘보이봉 참축제’는 팔라우만의 문화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조화롭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가장 오래된 대답 중 하나다. 말보다 조용한 기도, 힘보다 지혜, 경쟁보다 연대. 이 축제가 전하는 메시지는 지금 시대에도 유효하다. 팔라우의 여성 공동체는 이 축제를 통해 다시 중심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소리 없이 말하고, 말 없이 전하고, 자연과 인간, 생명과 기억을 하나로 엮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화려한 장식이나 인위적인 퍼포먼스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세계는 소음과 속도에 지쳐 있다. 하지만 팔라우에서는 여전히 밤하늘의 달과 해초의 향기, 아이들의 가면극과 원로의 찬가가 울려 퍼지고 있다. ‘보이봉 참’은 그래서 더욱 귀하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은 공동체의 목소리이며, 미래를 위한 고요한 노래다. 이 노래는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