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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의 달빛 아래 울리는 딕르, 코모로 모로니의 ‘그랑 마울리드’ 신성 행렬 (신앙,공동체,문화유산)

by clickissue 2025. 8. 9.

인도양의 달빛 아래 울리는 딕르, 코모로 모로니의 ‘그랑 마울리드’ 신성 행렬 (신앙,공동체,문화유산)

코모로 연방의 수도 모로니에서 열리는 ‘그랑 마울리드(Grand Mawlid)’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탄생을 기리는 국가적 차원의 종교·문화 축제다. 이슬람 수피 전통이 깊게 스며든 코모로 특유의 영성은 밤샘 딕르(Allah을 반복 송창하는 기억의 기도), 하드라(호흡과 리듬을 맞춘 집단 의식무), 꾸란 낭송, 나시드 합창으로 구현되며, 해안가와 구 시가지 메디나, 사원 앞 광장이 하나의 거대한 성소로 변모한다. 남성들은 하얀 칸주와 캅을, 여성들은 색동 실크 히잡과 라바를 차려 입고, 소년들은 향을 든 향로(부흐르)를 흔들며 행렬의 길을 정화한다. 섬 전역에서 몰려든 순례객과 주민들은 낮에는 자카트와 카미야(자선 음식 나눔)로 상생을 실천하고, 밤에는 샴세부 사원과 바다를 잇는 ‘빛의 행렬’로 도시를 수놓는다. 이 축제는 식민지 시대와 독립, 디아스포라의 기억을 관통하며 코모로의 정체성을 재서사화하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기능한다. 종교적 경외, 공동체 돌봄, 해양 문화의 미학이 교차하는 ‘그랑 마울리드’는 작은 군도국가가 지닌 거대한 영혼의 진폭을 보여준다.

인도양의 별빛과 메디나의 호흡, 코모로가 마울리드를 맞이하는 방식

인도양 중서부의 화산 군도, 코모로는 아프리카·아라비아·말라가시 문화가 교차하는 해상 회랑의 길목에서 성장해왔다. 그 중심지 모로니의 구 시가지는 산호석으로 쌓은 흰 담과 초록 문, 좁은 골목과 나무 격자 창으로 고요한 시간의 결을 간직한다. 매년 라비울아왈이 찾아오면 이 도시의 호흡은 달라진다. 사원 첨탑에서 ‘살라왓’이 더 길게 울리고, 장정들은 새벽의 파도를 등지고 묵언에 가까운 평정으로 향을 지핀다. ‘그랑 마울리드’의 시간표는 화려한 이벤트의 연쇄가 아니라, 기도와 기억, 환대와 나눔이 교차하는 영적 리듬의 배열이다. 아침의 꾸란 타즐위드 교정 모임, 낮의 마지리스(학당) 강해, 해질녘의 무타스비힌(찬양)과 자카트 분배, 밤의 딕르·하드라·나시드가 하루를 층층이 쌓아 올린다. 이 축제의 출발점은 기쁨이지만, 그 기쁨은 가벼운 흥취가 아닌 존재의 근원을 향한 기억의 열기다. 코모로의 수피 형제단들은 북과 타브르, 손뼉, 발구름의 단순한 리듬에 호흡을 싣고 이름(아스마)을 오래 불러 영혼의 진동을 키운다. 반복은 곧 깊이이며, 깊이는 곧 정화다. 그래서 마울리드의 밤은 소음이 아니라 침잠으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연등을 들고 골목 입구를 비추고, 노인들은 뼛속에 남은 현해탄의 바람을 벗 삼아 젊은 날의 선창을 기억한다. 행렬의 길은 메디나의 아치와 파리크 해변을 지나 바다로 열린다. 바다는 코모로에게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먹을거리의 원천, 무역의 길, 디아스포라가 떠나고 돌아온 서사, 그리고 신의 흔적을 비추는 거울이다. 마울리드 기간에 코모로의 환대는 문턱이 없다. 먼 섬에서 건너온 순례객을 위해 민가와 마드라사가 숙소가 되고, 시장 상인들은 대야째 준비한 꼬코 너트 라이스와 생선 무캇카, 카수라를 ‘카미야’로 나눈다. 자선은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공동체의 호흡으로 실천된다. 도시는 종일 분주하지만, 밤이 오면 모든 소음이 하나의 장단으로 수렴한다. 바다 쪽에서 타각(북)의 저음이 올라오고, 사원 마당에서 낭송이 겹겹이 얹히며, 사람들은 똑같은 구절을 각기 다른 삶의 음색으로 반복한다. ‘기억의 축제’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모로는 마울리드에서 과거의 아픔과 오늘의 도전을 한 자리에 세우고, 노랫말 사이로 화해와 재기의 서사를 덧댄다. 그래서 이 밤의 기쁨은 휘발되지 않는다. 다음 계절의 파도가 다시 밀려올 때까지, 삶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은은히 지속되는 빛으로 남는다.

딕르와 하드라, 빛의 행렬과 바다 의례: 의식으로 엮은 도시의 하루

그랑 마울리드의 구조는 선명하다. 해가 지면 사원의 마당과 메디나의 작은 광장마다 원이 만들어지고, ‘라일라일라 앨라’의 후렴과 함께 딕르가 시작된다. 선창이 구절을 열면, 원을 이룬 무리가 낮게 응답한다. 호흡과 박동이 맞춰질수록 원은 느리게 회전하고, 한 사람의 목청이 아니라 다수의 호흡이 공간을 울린다. 코모로의 딕르는 장식적 기교보다 ‘숨’의 길이를 중시한다. 각기 다른 폐활량과 삶의 속도가 하나의 박으로 수렴될 때, 원은 마치 파고를 넘어가는 카누처럼 흔들림 속의 평형을 얻는다. 하드라는 딕르의 열기를 춤으로 번역한다.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려 모래를 스치고, 상체를 미세하게 진동시키는 움직임은 외견상 소박하지만, 수련자의 내부에서는 강한 리듬이 솟는다. 북과 프레임 드럼의 엇박, 손뼉의 채움과 비움, 발구름의 미세한 시간차가 한 몸의 진동으로 묶인다. 여기에 나시드 합창이 얹히면, 노랫말은 강론이 되고, 강론은 곧 공동의 결의가 된다. 축제의 중반부, 샴세부 대사원 앞에서는 ‘빛의 행렬’이 시작된다. 대문에서 바다까지 이어진 길에 유리등과 천등이 줄지어 달리고, 소년들이 향로를 흔들며 길을 정화한다. 성명(살라왓)을 합송하는 동안, 도시의 벽과 수로, 상점의 셔터까지 빛과 향을 입는다. 코모로의 마울리드는 바다 의례로 절정을 맞는다. 노를 맞춘 카누 몇 척이 얕은 포말을 가르며 천천히 나아가고, 뱃머리에는 금실과 조개 장식으로 꾸민 깃발이 바람을 탄다. 선창의 구절이 물 위에서 반사되어 다시 해변으로 돌아오면, 사람들은 파도의 되울림을 신의 응답으로 읽는다. 이때 모로니의 어부 조합은 디아스포라와 고향을 잇는 상징으로 작은 병에 바닷물을 담아 사원의 정원으로 옮긴다. 바다는 생계였고 이주는 숙명이었기에, 물의 이동은 단지 장치가 아니라 섬의 역사 그 자체다. 낮의 장면도 영성에서 멀지 않다. 마지리스에서는 젊은 학도들이 타즈키야(마음 정화)의 장(章)을 낭송하고, 여성 모임은 고아 지원과 신혼 가구 꾸러미를 준비한다. 장정들은 구 시가지 배수로를 청소하고, 어부들은 무료 생선탕을 끓인다. 자카트와 와끄프, 소액기금 모금이 촘촘히 얽힌 사회적 안전망은 ‘축제’라는 이름으로 더욱 강해진다. 코모로의 마울리드는 쇼케이스가 아니라 생활 개혁의 가속 페달이다. 밤의 열기가 지난 뒤에도, 새로 정비된 우물과 장학금, 공동 창업기금이 도시의 다음 한 해를 떠받친다. 그래서 이 축제는 ‘하루짜리 기쁨’이 아니라 ‘일 년의 구조’를 바꾸는 신성한 장치로 기억된다.

작은 군도국가의 큰 영혼, 코모로가 세계에 건네는 신성의 문장

그랑 마울리드는 코모로에게 정체성의 문장이다. 이 축제는 종교적 경외, 사회적 연대, 해양 문화의 지혜를 한 문장에 꿰어 도시의 심장에 새긴다. 반복되는 딕르는 망각을 밀어내는 기술이고, 하드라는 상처를 몸으로 배출하는 언어이며, 바다 의례는 떠남과 돌아옴의 윤리를 삶의 중심으로 되돌린다. 세계 곳곳에서 공동체가 느슨해지는 오늘, 코모로는 ‘기억을 함께 수행하는 기술’로 사회를 재결속한다. 축제 기간의 자선과 돌봄은 혜택의 분배를 넘어 책임의 공유를 가르치고, 향과 등불, 노랫말은 다름을 가르는 경계를 잠시 지운다. 이 작고 가난한 군도국가가 꾸는 꿈은 크다. 그 꿈은 화려한 불꽃이 아니라, 오래 타는 등유의 불빛처럼 낮고 길다. 코모로의 마울리드는 세계를 향해 말한다. 신앙은 사적인 위안에 머무를 때 쇠하고, 공동의 양식이 될 때 견고해진다고. 바다는 늘 흔들리지만, 흔들림 속에서도 균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섬의 지혜라고. 그래서 축제의 마지막 밤, 사람들은 바다 쪽으로 등을 돌리지 않는다. 파도와 마주 선 채, 다음 계절의 일을 서로에게 약속한다. 그 약속은 메디나의 벽에 남은 향 냄새처럼 오래간다. 다음 달의 장터, 다음 학기의 등록금, 다음 비바람의 계절까지, 마울리드는 삶의 가장 현실적인 언어로 이어진다. 새벽이 오면 행렬의 등불은 꺼지고, 도시의 일과는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사람들 안의 리듬은 쉽게 식지 않는다. 손끝의 묵주알이 조금 더 천천히 구르고, 장터의 흥정에도 실낱같은 온기가 스민다. 신성은 먼 산의 설경이 아니라, 해안의 소금기와 장바구니의 무게 속에 깃든다고 코모로는 배운다. 작은 섬의 긴 호흡, 그 이름이 그랑 마울리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