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의 고대 도시 부하라에서 매년 열리는 ‘실크와 스파이스 축제(Silk and Spices Festival)’는 실크로드의 향기를 고스란히 담은 문화 유산 행사입니다. 수공예 장인, 전통 음악가, 민속 무용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중세 시장의 활기를 되살리는 이 축제는 중앙아시아 무형문화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장입니다.
실크로드의 영혼이 깨어나는 부하라의 봄
중앙아시아의 심장부, 우즈베키스탄의 고도(古都) 부하라(Bukhara)는 한때 세계 문명의 교차점이자, 실크로드의 핵심 중계지로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는 매년 5월경, 한때의 화려함을 고스란히 되살리는 전통 축제가 펼쳐진다. 바로 ‘실크와 스파이스 축제(Silk and Spices Festival)’다. 이 축제는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자리가 아니라, 고대의 숨결을 현대에 되살리는 살아 있는 문화 체험의 장이다. 부하라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서양의 문물이 오가던 상업과 학문의 중심지였으며, 비단과 향신료는 이 도시를 움직이는 생명이었다. 이 전통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축제는 이제 국가 차원의 문화 행사로 자리매김했고, 매년 국내외 수만 명의 관광객과 전통 장인, 예술가, 상인들이 이곳에 모여든다. 축제는 부하라의 역사적 중심지인 라비 하우즈(Lyabi Hauz) 광장과 성곽 주변에서 개최되며, 거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처럼 탈바꿈한다. 이 축제의 진정한 가치는 ‘단절되지 않은 시간’이다. 고대와 근대, 전통과 현대가 하나의 맥락 속에서 흐르며, 장인은 자신의 조부모가 했던 방식으로 비단을 염색하고, 여성들은 조상의 레시피로 향신료를 볶는다. 축제의 공간에는 단순한 상업적 볼거리 이상의 무게가 존재하며, 그것은 곧 민족의 기억과 예술, 노동의 영성이다.
수공예와 향신료, 그리고 삶의 리듬이 흐르는 거리
축제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수공예 시장이다. 장인들은 현장에서 직접 손으로 자수(수잔), 실크 직조, 도자기 제작, 금속 세공, 가죽 공예 등을 시연하며, 그 과정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비단 천 위에 세밀하게 그려지는 문양은 단지 장식이 아니라, 전통적인 상징과 이야기를 품은 문학적 예술이며, 금속 장식품 하나에도 ‘수세기 동안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 기술’이 스며 있다. 그다음은 향신료다. 커민, 강황, 팔각, 사프란, 계피, 건고추, 말린 허브들이 행렬처럼 진열된 노점에서는 오로지 향기만으로도 오감을 자극한다. 판매자는 손님에게 향신료를 직접 갈아 향을 맡게 하거나, 차나 음식에 어떻게 조합하는지 즉석에서 시연해준다. 이런 장면은 마치 천년 전의 바자르(bazaar)를 떠올리게 하며, 시장은 단지 ‘구매의 공간’이 아닌 ‘기억과 교류의 공간’이 된다. 축제 곳곳에서는 우즈베크 전통 춤과 음악이 끊이지 않는다. 소녀들은 화려한 민속 의상을 입고 손끝과 눈동자까지 동원해 섬세한 춤을 추고, 전통 악기인 도이라(Doira)와 탄부르(Tanbur)의 리듬은 거리 전체를 따뜻하게 울린다. 노인들은 시와 속담을 노래하듯 읊고, 아이들은 흙 인형을 만들며 조상의 놀이를 배운다. 축제는 또한 전통 요리의 향연이기도 하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의 대표 음식 ‘플로브(Palov)’는 대형 솥에서 수십 인분씩 조리되며, 향신료의 깊은 풍미와 쌀, 양고기의 조화가 감탄을 자아낸다. 누구든지 음식을 나누며 축제의 일원이 된다. 이렇듯 ‘실크와 스파이스 축제’는 물건이 아니라 ‘삶의 기억’을 사고파는 장터이다.
실크와 향신료로 잇는 시간의 다리
우즈베키스탄의 ‘실크와 스파이스 축제’는 단순한 문화행사를 넘어선, 민족 정체성과 문화유산의 생생한 복원이다. 이 축제를 통해 사람들은 과거를 체험하고, 현재의 삶과 연결하며, 미래로의 가치를 새긴다. 관광객에게는 이색적인 경험이지만, 현지인에게는 조상과의 대화이고,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이며, 공동체의 자긍심이다. 오늘날 많은 지역 전통이 산업화와 글로벌화 속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부하라의 축제는 그 흐름에 저항하며 전통의 지속 가능성을 증명한다. 이 축제는 또한 단절된 문화의 연결 고리를 회복하며,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을 다시 하나로 묶는다. 실크는 그 연결의 물질적 상징이고, 향신료는 감각적 기억의 매개체다. 축제가 끝나고 사람들이 떠나간 뒤에도, 부하라의 돌길에는 여전히 도이라의 울림과 자수의 색, 향신료의 흔적이 남는다. 그리고 이는 다음 해에도 어김없이 부활할 것이다. 실크로드의 영혼은 그렇게 살아 있다. 실크와 향신료의 시간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