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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대, 여성의 탄생을 기리는 의례 – 시에라리온 ‘본 오아 축제’

by clickissue 2025. 7. 26.

 

영혼의 무대, 여성의 탄생을 기리는 의례 – 시에라리온 ‘본 오아 축제’

시에라리온의 ‘본 오아 축제(Bondo Owa Festival)’는 여성의 성인식을 기념하는 전통 의례로, 비밀결사 ‘본도(Bondo)’를 중심으로 전통춤, 가면의식, 구술서사, 조상 숭배가 함께 진행됩니다. 젊은 소녀들이 여성이 되는 이 과정은 공동체와 조상, 영혼이 함께 참여하는 일종의 재탄생 의례이며, 시에라리온 문화의 정체성과 여성의 삶을 상징하는 축제입니다.

정글 안의 비밀 결사, 여성의 이름으로 열리는 의례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깊은 숲 속에는 세대를 이어 여성들만의 결사체가 전해져 옵니다. ‘본도(Bondo)’라 불리는 이 비밀 조직은 단지 전통 무속의 형태가 아니라, 공동체에서 여성이 태어나 자라 어른이 되는 과정을 공동체적 의례로 담아낸 살아있는 문화 그 자체입니다. ‘본 오아(Bondo Owa)’는 이 본도 결사에서 주관하는 대중 축제 형식의 성인식으로, 한 해에 단 한 번만 열리며, 소녀들이 여성으로 거듭나는 상징적 ‘탄생의 무대’라 불립니다. 이 축제는 단순히 어린이를 어른으로 대우해 주는 예식이 아니라, 소녀가 여성으로서 영적 권한을 얻고, 공동체 내에서 조상과 접촉할 수 있는 통로로서 인정을 받는 중대한 사회적 사건입니다. 댄스, 가면, 의복, 서사, 침묵, 노래, 신체의 단련까지 모두가 이 의식의 일부이며, 이 모든 절차는 여성 장로들이 전통 지식을 전수하면서 이어갑니다. 오직 여성만이 이 축제에 주체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남성은 주변에 있을 수는 있으나, 의식의 중심에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이 축제는 여성의 권위와 공동체 내 역할이 얼마나 강력하고 신성한지를 드러내는 문화적 표지입니다. 오아(Owa)는 현지어로 ‘사랑과 명예’를 뜻합니다. 축제의 의미는 단순한 성인의 입문을 넘어, ‘공동체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축복하고 준비시키는가’에 대한 서아프리카 문화의 응답이기도 합니다.

춤, 가면, 서사 – 영혼이 깃든 무대

축제는 한밤중 숲 속에서 울려 퍼지는 드럼 소리로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참가 소녀들은 어머니, 이모, 할머니들에게 둘러싸여 얼굴에 흰 점토를 바르고, 몸에는 잎사귀로 만든 상징적 복장을 입습니다. 이것은 이승과 저승, 현재와 조상의 세계를 동시에 상징하는 전환의 복식입니다. ‘오와춤(Owa Dance)’은 축제의 중심입니다. 무속적 리듬과 함께 여성 장로들이 먼저 등장하여 땅을 디디며 나선형 춤을 춥니다. 이는 조상의 영혼을 부르고, 땅의 정령과 연결되는 신성한 방식입니다. 이어 소녀들이 등장하여, 그동안 배운 춤과 노래, 이야기, 전통 식물의 약초 지식을 시연합니다. 이 과정은 하나의 시험이자 공연이며, 영혼을 향한 헌정입니다. 이때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은 ‘소웨이 마스크(Sowei Mask)’를 쓴 무용수입니다. 이는 본도 비밀결사의 수호령으로, 소웨이 가면은 물고기의 눈과 여신의 머리를 결합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 가면을 쓴 이는 단순한 사람 이상으로 여겨지며, 여성성과 신성함을 동시에 대표합니다. 가면은 흑단목으로 정교하게 조각되며, 그 속에는 조상, 정령, 자연이 깃들어 있다고 믿습니다. 축제는 몇 날 며칠 이어지며, 낮에는 공동체의 가족들이 음식을 나누고 노래를 부르며, 밤에는 불빛 아래서 마스크와 무용, 구술 전승이 이어집니다. 특히 이야기꾼들이 들려주는 여성 신화와 전설은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삶의 윤리를 전수하는 역할을 하며, 이는 교육이자 축제의 가장 신성한 부분입니다. 마지막 날에는 참가자 전원이 중앙에 모여 물을 붓고, 땅에 입맞춤하는 ‘환원 의식’이 진행됩니다. 이는 자연으로부터 삶을 받았으니, 다시 감사하며 자신을 되돌려드린다는 상징적 행위로, 본도 정신의 핵심인 ‘순환’과 ‘귀속’을 표현합니다.

전통, 기억, 여성성의 집단 시학

본 오아 축제는 시에라리온이라는 나라의 역사 속에서도 독특하게 빛나는 전통입니다. 서구식 발전과 교육, 도시화의 바람이 빠르게 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축제는 여전히 해마다 수백 명의 참여자와 수천 명의 공동체 구성원을 모읍니다. 그것은 단지 ‘전통 보존’이 아니라, 이 문화가 가진 존재론적 힘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축제는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권위, 여성의 전승이 중심에 서 있는 드문 예입니다. 가면과 춤, 이야기, 침묵과 외침 모두가 여성의 손에서 태어나고, 여성을 통해 이어지며, 공동체는 이를 통해 자신을 기억합니다. 현대의 눈으로 보면 ‘폐쇄적’이거나 ‘신비주의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본 오아는 실제로는 누구보다 열려 있고, 모든 존재가 조화롭게 연결된 공동체의 축제입니다. 외부인이 직접 참여하기는 어렵지만, 이 전통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이들에게는 놀라운 문화적, 철학적 영감을 줍니다. 숲은 말을 하지 않지만, 축제 내내 숲은 응답합니다. 그 속에서 울리는 북소리와 노래는, 단지 과거의 메아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과 공동체의 목소리입니다. 본 오아는 그 목소리가 대를 넘어 살아 숨 쉬게 하는 의례이며, 이 땅의 삶을 긍정하는 가장 강한 시(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