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서 매년 3월 21일경 열리는 나우르즈(Nauryz) 축제는 봄의 도래와 자연의 재생을 기념하는 고대 튀르크계 전통으로, 단순한 민속행사를 넘어 신성한 상징성과 공동체 결속의 의미를 지닌다. 풍성한 음식, 전통 복장, 음악, 춤, 경마, 씨름 등으로 다채롭게 펼쳐지는 이 축제는 대지의 숨결을 느끼며 사람과 자연, 신성한 기운이 하나 되는 날이다. 특히 알타이 산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나우르즈의 의식과 행사는 신령과 조상의 영혼을 모시는 깊은 영성으로 가득하다.
알타이의 봄, 생명의 숨결이 돌아오는 시간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평원은 매년 봄, 특별한 설렘으로 들썩인다. 바로 ‘나우르즈(Nauryz)’ 축제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 페르시아력의 새해, 즉 춘분을 기념하는 행사로 시작되었지만, 수천 년에 걸쳐 튀르크 문화와 결합하며 지금의 형태로 정착되었다. 특히 카자흐스탄에서는 이 축제가 단순한 연례행사를 넘어, 민족의 뿌리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공동체의 화합을 상징하는 신성한 의례로 자리 잡았다. 나우르즈는 ‘새로운 날’이라는 뜻을 지닌다. 겨울이 끝나고 얼어붙은 대지에 다시 온기가 퍼지듯, 사람들은 이 시기를 새로운 생명의 시작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이 축제는 단지 '봄맞이'가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경배이자 생명 순환의 찬미로 가득하다. 특히 알타이 지역에서는 이 나우르즈가 정령 신앙, 조상 숭배와 결합되어 매우 독특한 종교문화적 색채를 띠게 된다. 이 시기 사람들은 각 가정에서 '나우르즈 코제(Nauryz Kozhe)'라는 특별한 수프를 준비한다. 이는 일곱 가지 재료로 만들어지며, 곡물, 유제품, 고기 등이 조화롭게 섞여 생명의 균형과 풍요를 기원한다. 또한 고대부터 이어진 정화의 상징으로, 물을 뿌리며 악운을 씻어내는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도시와 마을에서는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나우르즈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를 연다. 말을 탄 기수들이 퍼레이드를 펼치고, 카자흐 전통 씨름인 '카레스' 경기가 열리며, 아이들과 노인들이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이 모든 장면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자연과 인간, 공동체와 신성의 재결합을 상징하는 삶의 의례로 작동한다.
정령의 숨결과 전통의 융합, 나우르즈의 하루
나우르즈 축제의 핵심은 ‘재생’과 ‘정화’다. 이 날은 단순히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 아닌, 자연과 인간이 다시 연결되는 신성한 순간으로 여겨진다. 카자흐스탄의 알타이 지역에서는 특히 정령 신앙이 강하게 남아 있어, 축제 기간 중 사람들은 산과 강, 나무, 불, 바람의 정령에게 제를 올리고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이를 통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태도를 되새기며,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아이 오이’라 불리는 전통 천막에서 펼쳐지는 연회다. 이 천막은 둥글고 넓은 구조로, 공동체의 중심을 상징한다. 내부에는 화려한 자수 천과 전통 장식들이 놓여 있으며, 노인들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젊은이들은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춘다. 이는 단지 세대 간의 소통이 아닌, 살아있는 역사와 기억의 재현이다. 음식은 또 하나의 중요한 축제 요소다. ‘나우르즈 코제’를 비롯해 말고기 소시지인 ‘카즐락’, 양고기와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만두 ‘만티’, 달콤한 튀김 ‘바우르삭’ 등은 각 가정과 공동체가 나누며 풍요를 기원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특별히 준비된 이 음식들은 단지 먹거리를 넘어서, 조상과 정령에게 바치는 제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나우르즈 축제는 또한 ‘용서의 날’로 여겨진다. 이 날만큼은 서로 간의 앙금을 풀고 화해하며, 새로운 인연을 맺는 데 집중한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대를 회복하고 사회적 에너지를 재정립하는 실천이다. 밤이 되면 불의 의식이 열린다. 커다란 모닥불을 피우고, 사람들은 그 주위를 돌며 소원을 빈다. 불은 모든 부정적인 기운을 태우고 정화하는 신령한 존재로 여겨진다. 불꽃 속에서 춤을 추며, 사람들은 그 해의 건강과 행복, 평화를 기원한다. 이 장면은 자연과 인간, 현실과 영적 세계가 하나로 만나는 의식적 절정이다.
전통과 자연,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시간
나우르즈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 카자흐 민족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응축한 거대한 문화적 유산이다. 이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행위인 동시에, 인간과 자연, 신령과 조상, 과거와 미래를 하나로 잇는 정신적 통로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는 정령과의 교감, 생명의 존중, 그리고 공동체적 연대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축제를 통해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서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희망을 동시에 살아낸다. 이는 단지 한 날의 즐거움이 아닌, 살아 있는 문화의 계승이며, 인간과 자연 사이에 맺어진 신성한 약속을 되새기는 실천이다. 특히 알타이의 산자락에서 펼쳐지는 나우르즈는 더욱 깊은 영성과 미학을 자아내며, 모든 참여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한다. 현대 사회는 점점 자연과 분리된 삶을 추구하지만, 나우르즈는 다시금 자연과 하나 되는 삶,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방식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이 축제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나우르즈는 봄의 이름이자, 삶의 방식이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일깨우는 신성한 축복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