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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잇는 조상의 숨결, 솔로몬 제도 아레아레 팬파이프 축제의 영혼

by clickissue 2025. 7. 25.

 

소리로 잇는 조상의 숨결, 솔로몬 제도 아레아레 팬파이프 축제의 영혼

솔로몬 제도 말라이타 섬의 아레아레 부족은 전통 악기 팬파이프를 중심으로 한 음악 축제를 통해 조상과 자연, 공동체의 조화를 기립니다. 목재와 대나무로 만든 팬파이프는 다성부 화음을 통해 서사적 전통을 계승하고, 축제는 노래, 춤, 의식과 함께 영적 정체성을 되새기는 신성한 시간입니다. 이는 단순한 음악 행사를 넘어 문화와 생명의 심장을 울리는 의례입니다.

숲이 숨 쉬는 소리, 바다가 따라 부르는 화음

남태평양의 보석이라 불리는 솔로몬 제도는 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이며, 그 안에는 수백 개의 고유한 부족 문화가 살아 숨 쉽니다. 그중에서도 말라이타 섬의 아레아레(Are’Are) 부족은 독특한 음악 문화를 보존해온 공동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언어 대신 악기로 이야기하고, 소리로 조상을 기리며, 자연과의 교감을 유지하는 문화적 존재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문화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아레아레 팬파이프 축제(Are’Are Panpipe Festival)’입니다. 이 축제는 매년 우기 전, 땅과 바다의 경계가 선명해지는 시기에 열리며, 공동체 구성원들이 팬파이프를 연주하며 집단적 음악과 영적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신성한 의식입니다. 팬파이프는 대나무와 목재로 만들어지며, 크기와 배열에 따라 각각 다른 음역을 가지고 있어 여러 연주자가 협력하여 한 곡을 완성해야 합니다. 축제는 단지 악기 연주가 중심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과거와 현재, 조상과 후손,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서사적 의례입니다. 팬파이프 연주는 조상들의 이야기, 마을의 전설, 바다의 변화를 노래하는 ‘소리의 구술사’ 역할을 하며, 마을 주민들은 연주를 통해 이야기를 기억하고 또 새롭게 창조합니다.

소리의 공동체, 다성부로 짜인 영혼의 직조

팬파이프 연주는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연주자는 한두 개의 음만을 연주하며, 그들이 모여야 하나의 곡이 완성됩니다. 즉, 이 음악은 개인의 기술이 아닌 집단의 호흡, 협력, 그리고 감각의 융합이 중심입니다. 아레아레 부족은 이를 ‘하나의 숨’이라 부르며, 이 ‘숨’이 끊기면 음악도 죽는다고 여깁니다. 축제 당일, 연주자들은 모두 검은색과 붉은색이 섞인 전통 의상을 입고 숲 속 제단에서 시작합니다. 숲의 정령에게 축복을 구하고, 연주를 허락받는 의식을 치른 뒤, 연주는 해변으로 이어집니다. 숲과 바다, 즉 생명의 두 극이 연결되는 그 장면은 자연 전체가 공연의 무대가 되는 듯한 장엄함을 자아냅니다. 연주되는 곡 중에는 ‘웨이 아나(Wai Ana)’라는 서사적 곡이 있는데, 이는 아레아레 부족의 기원과 조상의 항해를 노래하는 곡입니다. 이 음악은 최대 25명의 연주자가 동시에 협업하며, 리듬의 높낮이와 음색의 층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관객들은 이를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몸을 흔들고 눈을 감고, 때로는 따라 부르며 함께 참여합니다. 축제에는 팬파이프 외에도 전통 북, 손뼉, 음성 챈팅이 동반되며, 모든 음악은 즉흥성과 전통성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참여하는 ‘신생 팬파이프 경연’은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노래들이 추가되어 전통의 살아 있는 확장을 보여줍니다. 이 축제를 통해 아레아레 사람들은 과거를 기억하는 동시에 미래를 노래하는 존재로 거듭납니다.

팬파이프는 나무가 부르는 조상의 노래

아레아레 팬파이프 축제는 음악이라는 예술을 통해 정체성과 역사, 공동체의 기억을 재생하는 장입니다. 그들이 연주하는 팬파이프의 소리는 단지 대나무에서 나온 음이 아니라, 수백 년 이어진 삶과 신념, 자연과 호흡의 축적된 표현입니다. 이 축제를 통해 사람들은 ‘소리’를 통해 자신을 기억하고, 서로를 확인하며, 조상과 대화합니다. 현대 세계가 텍스트와 이미지에 집중하는 사이, 아레아레 부족은 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기억을 노래하며, 정체성을 강화합니다. 팬파이프는 그들의 문화에서 단지 악기가 아니라, 생존과 존재를 증명하는 ‘소리의 방패’이며 ‘역사의 통로’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음악이 집단적인 예술이라는 점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알고, 서로를 믿고, 하나의 호흡으로 연주하는 그 모습은 오늘날 사회가 잊고 있는 공동체성과 신뢰의 본질을 상기시켜 줍니다. 숲의 나무는 자라 소리가 되고, 그 소리는 다시 사람의 입과 손을 거쳐 조상의 이야기를 부릅니다. 이 축제는 그렇게, 생명을 따라 흐르는 소리의 순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