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북동부 마니푸르 지역에서 열리는 라이람비 축제는 여성신 라이람비 여신을 기리는 신성한 제의로, 전통 무용과 노래, 그리고 숲의 정령을 상징하는 의식들이 어우러진 영적인 행사입니다. 여성성과 자연의 조화를 중심으로 한 이 축제는 공동체의 영적 정체성과 생명의 순환을 기리는 독특한 종교 문화로 자리 잡고 있으며, 여성이 제의의 중심에 서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화려한 복장과 음악, 신비로운 분위기의 퍼포먼스는 마니푸르 고유의 전통과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창입니다.
숲과 여신이 만나는 마니푸르의 비밀스러운 밤
인도 북동부, 히말라야 산맥 남단의 마니푸르 주는 빽빽한 숲과 안개 낀 계곡, 그리고 다채로운 토착 신앙이 살아 숨 쉬는 지역입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여성신 라이람비(Lai Haraoba)를 기리는 신성한 축제 ‘라이람비 축제(Lai Haraoba)’가 성대하게 열립니다. ‘라이(Lai)’는 신을 뜻하고 ‘하라오바(Haraoba)’는 즐겁게 하다라는 뜻으로, 곧 ‘신을 즐겁게 하는 축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축제는 단순한 민속 행사가 아니라, 마니푸르인의 세계관과 우주론이 집약된 종합적 의식 체계입니다. 자연을 어머니이자 신성한 존재로 바라보는 마니푸르 전통은 이 축제를 통해 강렬하게 표출되며, 특히 여성들이 의식의 중심에 서서 여신의 분신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는 가부장적 성향이 강한 인도 대다수 지역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마니푸르만의 독특한 문화적 지형을 보여줍니다. 축제는 보통 5일에서 15일까지 이어지며, 이 기간 동안 마을은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차고, 음악과 춤, 제례가 끊이지 않습니다. 특히 ‘마이바(Maiba)’와 ‘마이비(Maibi)’로 불리는 전통 사제들이 의식을 주도하며, 마이비는 여성으로서 여신과 직접 교감하며 신의 의지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들은 춤과 노래를 통해 창세 신화를 재현하고, 공동체의 안녕과 조화를 기원합니다.
춤과 노래로 여신을 부르는 제의의 장면들
라이람비 축제의 핵심은 마이비의 춤과 노래, 그리고 ‘사이크롱(Saikhrol)’이라 불리는 창세 신화의 재현입니다. 사이크롱은 인간과 자연, 신의 탄생을 전승하는 이야기로, 마이비들은 이를 신성한 퍼포먼스로 풀어내며 여신의 영적 존재를 다시 이 세상으로 불러옵니다. 이 춤은 단순한 공연이 아닌 의식 그 자체이며, 고대의 언어와 몸짓, 음악이 하나로 어우러져 신과 인간이 교감하는 통로가 됩니다. 춤은 나선형의 움직임, 반복되는 손동작, 눈빛의 집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모두 창조와 순환을 상징합니다. 마이비의 복장은 흰색과 붉은색 천으로 장식되며, 머리에는 꽃으로 장식된 관을 쓰고, 손에는 신성한 부적을 들고 있습니다. 이 모든 요소는 신과 직접 연결되는 매개로 작용하며, 퍼포먼스 내내 주변에는 향이 피워지고 전통 현악기 '펜나(Pena)'의 음악이 흐릅니다. 이외에도 ‘라이 루(Laileu)’라 불리는 집단 춤, 전통 음악 콘서트, 어린이를 위한 신화 이야기극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펼쳐지며, 이는 공동체 전체가 축제에 참여하는 구조를 이룹니다. 사람들은 신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나누고, 성스러운 나무 주위를 돌며 정화를 기원합니다. 특히 축제 마지막 날에는 여신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는 상징적 의식이 열리며, 이는 대자연의 순환과 작별, 그리고 재회를 상징하는 중요한 순간으로 여겨집니다.
여성과 자연의 신비가 피어나는 성스러운 시간
라이람비 축제는 여성의 신성과 자연의 경외를 기리는 인류 보편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축제를 통해 우리는 종교와 문화, 자연과 인간, 여성성과 공동체가 어떻게 하나의 영적 흐름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체감하게 됩니다.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신성성과 조화의 감각을 일깨우는 이 축제는, 단순한 전통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를 위한 영적 메시지로 기능합니다. 마니푸르 사람들에게 이 축제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자, 공동체와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마이비의 춤을 통해 전해지는 신의 메시지, 그리고 그 무대가 되는 숲과 마을의 조화로운 관계는 인류가 지향해야 할 삶의 방향을 보여줍니다. 여성의 힘이 존중받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노래하고 춤추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축복이라는 가르침이 이곳에 담겨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마니푸르의 라이람비 축제를 통해, 단절된 현대 문명 속에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원초적 신성과 그 순환의 지혜를 새롭게 마주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 또한 자신만의 라이람비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