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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나라 레소토, 모코로툼의 북소리에 깨어나는 정체성

by clickissue 2025. 7. 25.

 

산의 나라 레소토, 모코로툼의 북소리에 깨어나는 정체성

레소토의 전통 음악 축제 ‘모코로툼(Mokorotlo)’은 남아프리카 고원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는 북 연주 의례입니다. 남성 전사 복장을 한 연주자들이 둥근 모자와 망토를 두르고 북을 치며 공동체의 이야기와 조상의 혼을 깨웁니다. 모코로툼은 단순한 공연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와 정신을 되살리는 장으로, 레소토인의 자긍심과 집단 기억이 녹아 있는 문화적 심장입니다.

북을 울리는 자, 정체성을 되살리다

아프리카 남부 내륙의 고산 국가 레소토는 ‘구름 위의 나라’라는 별명처럼 평균 해발 1,400미터 이상의 고원 지대에 자리한 작은 왕국입니다. 높은 지형과 험준한 환경 속에서도 수세기 동안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보존해온 이 나라는, 공동체 중심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그 중심에 자리한 것이 바로 ‘모코로툼(Mokorotlo)’이라 불리는 북 연주 문화입니다. 모코로툼은 단지 악기 연주가 아니라, 레소토인의 삶을 이어주는 ‘문화적 북소리’입니다. 이는 전통적으로 족장 회의, 성인식, 결혼식, 장례식 등 중요한 순간에만 울려 퍼졌으며, 북의 리듬은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점차 이 북 문화는 연례적인 축제로 자리잡았고, 오늘날에는 ‘모코로툼 축제’라는 이름으로 레소토 전역에서 열리는 문화행사가 되었습니다. 축제는 주로 수도 마세루 근처나 산간 마을의 평지에서 열리며, 각 마을의 북 연주자들이 전통 복장을 입고 참가합니다. 이 복장은 베르디 모자, 담요형 망토(바솔로 담요), 가죽 끈 장식 등으로 구성되며, 모든 것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연주자들은 북을 치며 조상에게 기도를 드리고, 공동체의 단합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소리 그 자체가 메시지이자 정체성의 선언입니다.

집단 기억의 리듬, 북에 담긴 공동체의 숨결

모코로툼의 북은 단순한 타악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기억의 매개체이며, 말보다 먼저 울리고, 감정보다 먼저 움직이는 리듬의 언어입니다. 북의 재료는 양가죽과 현지에서 자란 마른 나무로, 제작 과정부터 신성하게 다루어집니다. 연주 전에는 반드시 제사의식을 거쳐야 하며, 이는 북에 조상의 혼이 깃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연주 방식도 독특합니다. 북 하나당 두 명이 함께 연주하는데, 한 사람은 리듬을, 다른 사람은 변주를 담당합니다. 이 둘 사이의 주고받음은 레소토의 사회 구조를 상징하는데, 개개인의 힘이 아닌 협력의 조화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이상을 반영합니다. 북의 리듬은 고원 지대에 울려 퍼지며, 마치 산과 계곡 전체가 호흡하는 듯한 웅장한 공명을 이끌어냅니다. 축제 중 가장 상징적인 순간은 ‘조상의 호출’이라 불리는 의식입니다. 이는 북의 특정 리듬을 통해 조상의 혼을 부르고, 마을의 원로들이 그 혼과 소통하여 공동체의 방향을 점치는 시간입니다. 이 장면은 참여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시간과 세대를 넘어 하나가 되는 듯한 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모코로툼은 춤과도 연결됩니다. 북의 리듬에 맞춰 사람들은 나선형으로 원을 그리며 걷고, 발을 구르고, 손을 들며 고원 대지와 일체가 됩니다. 이 춤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땅과 사람과 하늘을 잇는 신성한 루틴이며, 그 안에는 생명과 연대, 기억과 비전이 숨 쉬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코로툼 축제는 하나의 ‘음악적 정치체’이며, 레소토 사회에서 문화적 통합과 정신적 재생을 이루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합니다.

산과 북, 사람과 기억이 만나는 순간

모코로툼 축제는 사라져가는 북소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역사입니다. 레소토인들에게 있어 북은 단지 소리 내는 도구가 아닌, 조상의 말, 땅의 호흡, 공동체의 의지를 담은 생명체입니다. 이 북을 통해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다시 묻고, 또 확인합니다. 현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이러한 전통은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지만, 레소토에서는 오히려 중심으로 끌어올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문화의 보존이 단지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기억의 재구성이라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모코로툼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축제이며, 무대가 아닌 삶 그 자체에서 울려 퍼지는 리듬입니다. 북이 울리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발을 구르고, 마음은 조상의 시간으로 돌아가며, 다시 새로운 세대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그 북소리는 산을 타고 흐르고, 고원 바람에 실려, 다시 마을로, 사람의 심장으로 스며듭니다. 그리고 그 울림은, 레소토라는 이름의 생명력을 증명하는 가장 강렬한 선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