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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조상의 영혼을 잇는 고산의 축제, 조지아 ‘투스헤토바’

by clickissue 2025. 7. 26.

산과 조상의 영혼을 잇는 고산의 축제, 조지아 ‘투스헤토바’

조지아 고산 지대 투스헤티에서 열리는 ‘투스헤토바(Tushetoba)’는 목축민의 여름을 기념하는 전통 축제로, 양몰이 경주, 말 타기, 전통 복식 퍼레이드, 민속 음악과 춤, 치즈 나눔 등이 펼쳐집니다. 코카서스 산맥의 아름다움과 조상 숭배, 전통을 계승하는 공동체 의례로, 조지아 고산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강렬한 자연-문화적 체험입니다.

산이 지켜주는 민족, 투스헤티의 시간

조지아 북동부의 투스헤티(Tusheti)는 코카서스 산맥 한가운데, 해발 2,000미터 이상의 고산 지대에 자리한 고립된 지역입니다. 이곳은 수백 년간 목축과 자연 숭배, 조상 제의가 이어져온 독특한 공동체 문화의 보고로, 조지아 사람들조차 “시간이 멈춘 땅”이라 부를 정도로 전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 특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축제가 바로 ‘투스헤토바(Tushetoba)’입니다. 이는 투스헤티의 여름이 시작될 무렵, 각 부족과 가족 단위의 목축민들이 다시 고향 마을로 모여드는 시점에 맞춰 열리는 전통 민속 축제입니다. 축제는 주로 옴알로(Omalo) 마을에서 펼쳐지며, 조상의 땅으로 돌아온다는 상징성과 함께 목축민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의례적 행사입니다. 투스헤티의 사람들은 대부분 여름이면 고산으로 가축을 몰고 올라가 자연 속에서 생활하며, 겨울이면 저지대로 내려가는 반유목 생활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귀환’은 단지 공간의 이동이 아닌, 조상과의 재회이며, 삶의 순환을 되새기는 영적인 경험입니다. 투스헤토바는 바로 이러한 정서적, 신앙적 귀환을 문화의 형식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이 축제는 단지 먹고 즐기는 행사가 아니라, 투스헤티라는 땅의 기억을 되새기고, 공동체가 서로를 확인하며, 전통을 새롭게 계승하는 의식입니다. 현대 문명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이 축제가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말, 양, 사람… 자연과 하나 되는 하루

투스헤토바의 아침은 양떼의 종소리와 함께 시작됩니다. 축제는 ‘양몰이 경주’로 문을 여는데, 이는 각 가족이 키운 목동 개와 목동의 협업 능력을 겨루는 행사로, 투스헤티 사람들의 실용적이고도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드러납니다. 이어서 펼쳐지는 ‘말 타기 시합’은 이 지역 소년들의 통과의례와도 같으며, 참가자들은 전통 복식 ‘초카(Chokha)’를 입고 질주합니다. 이 축제의 또 다른 중심은 ‘전통 식품과 술의 나눔’입니다. 각 가문은 집에서 만든 치즈, 발효유, 꿀술(메드), 보리빵 등을 광장 중앙에 차려놓고, 손님들과 함께 나눕니다. 특히 ‘구다 치즈(Guda Cheese)’는 양가죽에 보관한 발효 치즈로, 투스헤티만의 맛과 기술이 담겨 있으며, 이 치즈를 한입 먹는 것은 마치 이 땅의 기억을 씹는 것과 같습니다. 축제 중반에는 ‘추아즈미(Chuazmi)’라 불리는 조상 제례가 열립니다. 이는 산의 정령과 조상 영혼에게 감사와 평화를 기원하는 의식으로, 가장 연장자가 흰 술과 빵, 말고기를 바치며 기도를 올립니다. 이때 사람들은 정중히 머리를 숙이며, 땅에 입맞춤하는 행위로 영혼과의 연결을 표현합니다. 민속 음악과 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조지아 특유의 다성(多聲) 합창, 그리고 손을 잡고 돌면서 추는 ‘페레크루이(Perekhuri)’ 춤은 공동체의 유대를 가장 아름답게 시각화한 순간입니다. 음악은 울리되 요란하지 않고, 춤은 들뜨기보다 깊은 흐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는 산이 주는 절제와 고요함의 문화이기도 합니다. 축제에는 조지아 전역에서 관광객이 찾아오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현지인, 특히 청년들이 맡습니다. 그들은 전통을 실천하며, 이 축제를 통해 자신들의 뿌리를 체감합니다. 이는 교육이자 생존의 방식이며, 문화의 재생산 현장입니다.

산에 새겨진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

투스헤토바는 코카서스 산맥과 함께 살아온 투스헤티인들의 정체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축제입니다. 이곳에서 전통은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먹고 입고 움직이는 ‘살아 있는 언어’입니다. 고산의 바람과 냄새, 동물과 사람의 호흡이 한데 어우러진 이 하루는, 그 자체로 한 편의 공동체 서사입니다. 특히 이 축제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실천적으로 보여줍니다. 무분별한 개발도, 상업적 전시도 없이, 자신들의 삶과 문화를 ‘그대로’ 나누는 방식은 현대 사회에 강한 울림을 줍니다. 말 위에 앉은 소년, 손에 치즈를 든 노인,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어머니… 이 모든 장면은 조지아가 가진 다층적 문화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투스헤티는 인구가 줄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축제가 존재하는 한, 이 땅은 잊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의미를 찾기 위해 오고, 또 배우고 돌아갑니다. 투스헤토바는 한 마을의 축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조지아 전체의 뿌리를 확인하고, 우리가 누구인지 다시 묻는 하나의 신성한 제의입니다. 산은 말합니다. “너희는 이곳에서 왔다. 그리고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