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크메니스탄의 ‘나우르즈 바이라미(Nowruz Bayramy)’는 페르시아력 새해를 기념하는 봄맞이 축제로, 자연의 순환과 인간 공동체의 재탄생을 축복하는 특별한 날입니다. 이 축제는 중앙아시아 고유의 전통, 이슬람 이전의 신앙, 현대 국가 정신이 어우러지며, 농경과 유목문화가 교차하는 투르크메니스탄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춤과 음악, 전통요리와 경마, 장터와 공동 식사가 어우러진 이 축제는 사람과 자연, 신과 전통이 하나 되는 시간입니다.
고대와 현재를 잇는 새해의 문, 나우르즈 바이라미
투르크메니스탄은 실크로드의 중심이자 고대 오아시스 문명의 발상지로, 유목과 농경이 공존하는 특유의 문화가 형성된 지역이다. 이 땅에서 나우르즈 바이라미는 단순한 명절이 아니라 대자연과 인간의 재결합을 축복하는 ‘삶의 순환 의례’로 자리 잡고 있다. ‘나우르즈(Nowruz)’는 본래 ‘새로운 날’을 의미하며, 춘분을 기준으로 한 페르시아 전통력의 새해를 의미한다. 이는 투르크계 국가와 이란계 국가들 전역에서 지켜지는 광범위한 축제이지만,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고유한 양식으로 발전해왔다. 축제는 매년 3월 21일경 시작되며, 국경일로 지정돼 전국적으로 공휴일이 선포된다.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광장에는 천막이 설치되고, 다양한 지역에서 온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와 놀이, 예술공연을 함께 즐긴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퍼레이드와 민속공연이 수도 아슈하바트에서 펼쳐지고, 지방에서는 각 마을 단위로 고유의 전통 놀이와 의례가 진행된다. 특히 이 시기를 맞아 결혼식이나 약혼식, 성인식 같은 통과의례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며, 새해와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를 여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축제는 또한 조상에 대한 기억과 미래 세대에 대한 기원을 동시에 담고 있다. 전통 의상으로 갈아입은 노인들은 어린이들에게 전통 이야기를 들려주고, 여성들은 가정의 부엌에서 세대 간 전수된 레시피로 음식을 준비한다. 이는 단순한 음식 제공을 넘어 전통의 실천이자, 공동체 내 지식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또한 젊은이들은 음악과 춤, 씨름과 경마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에너지를 해방시키며 새로운 한 해의 활기를 축하한다. 나우르즈 바이라미는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 정체성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근대화된 도시 공간에서도 여전히 전통적인 모습으로 존속되고 있다. 이는 단지 과거의 문화재가 아니라 현재의 일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전통으로, 공동체의 심장처럼 뛰고 있는 축제이다.
불의 의식과 공동 식사, 전통의 향연
나우르즈 바이라미의 핵심 의례 중 하나는 ‘불을 넘는 의식’이다. 이는 고대 조로아스터교에서 유래한 풍습으로, 불이 인간의 죄와 부정을 정화시킨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해가 지기 직전, 마을 광장이나 들판에 모닥불이 피워지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불을 세 번씩 뛰어넘으며 “나의 병을 불에게, 건강을 나에게”라고 외친다. 이 장면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나우르즈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공동 식사’다. 각 가정에서는 ‘숨마락(Sumalak)’이라는 특별한 죽을 준비한다. 이는 밀싹을 발효시켜 만든 고유의 음식으로, 수십 시간 동안 끓여야 하는 정성이 깃든 요리다. 마을 사람들은 숨마락을 함께 나누며, 이웃 간의 우애를 다지고 새해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한다. 이외에도 양고기 바비큐, 전통 빵, 견과류, 말린 과일 등 투르크메니스탄 특유의 향토 음식이 광장과 장터에 가득 차며, 축제의 분위기를 더욱 흥겹게 만든다. 축제 중에는 전통 음악과 춤 공연이 이어지며, 지역에 따라 다양한 악기와 의상, 리듬이 펼쳐진다. 특히 ‘바흐시’라 불리는 전통 시인 겸 가수들은 고대 서사시를 낭송하며, 관객들과 즉흥적으로 대화하는 방식으로 축제의 열기를 고조시킨다. 이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집단의 역사와 정체성을 되새기는 구술문화의 장이기도 하다. 더불어 경마, 씨름, 활쏘기 등 유목민 전통을 반영한 스포츠가 열리며, 남성들의 기량과 용맹을 겨루는 자리도 마련된다. 어린이들은 전통놀이에 참여하고, 여성들은 수공예 시장에서 직접 만든 직물, 자수, 보석 등을 판매하며 지역 경제를 일구는 모습도 나타난다. 이 모든 장면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전통문화가 단지 보존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축제라는 살아 있는 무대를 통해 새롭게 창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지와 불, 사람과 신을 잇는 삶의 순환
나우르즈 바이라미는 단지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명절이 아니다. 그것은 투르크메니스탄인들이 어떻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어떻게 공동체를 이끌며,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지를 집약한 하나의 문화적 결정체이다. 춘분이라는 자연의 변곡점에서 우리는 생명의 재순환을 목도하고, 불을 넘으며 정화되고, 음식을 나누며 유대를 확인한다. 이 축제는 또한 현대사회가 잃어버린 ‘함께 사는 법’을 되새기게 한다. 경쟁과 단절 대신 나눔과 연대, 고립된 개인 대신 공동체의 환희. 나우르즈 바이라미는 이러한 삶의 철학을 단 하루가 아닌 연중행사처럼 가르쳐준다. 특히 도시화와 글로벌화로 인해 점점 사라져가는 지역 문화 속에서도 이 축제가 여전히 강력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전통이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의 삶을 지탱하는 뿌리임을 입증한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들판과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북소리, 불꽃, 아이들의 웃음, 노인들의 기도는 모두 이 대지 위의 인간들이 나누는 하나의 ‘응답’이다.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삶, 공동체 안에서 함께 숨 쉬는 존재, 기억과 희망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 바로 나우르즈 바이라미가 존재한다. 그 축제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시금 자신이 어떤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