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바시의 ‘테 카이마토아(Te Kaimatoa)’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나라의 공동체적 노래 축제로, 노래를 통해 조상과 전통을 기리고 자연과 삶을 이어가는 상징적 의례입니다. 섬의 노인과 어린이 모두가 참가해 다성부 화음과 바디퍼커션을 통해 자연과 연결된 삶의 철학을 전달하며, 침수 위협 속에서 문화 정체성을 지켜내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태평양의 심장, 노래로 이어진 기억
키리바시는 33개의 산호섬으로 이루어진 남태평양의 섬나라입니다. 평균 해발 고도가 2m를 넘지 않아 지구에서 가장 먼저 기후변화로 사라질 수 있는 국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이에 따라 그들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노래는 시간과 바다 사이에서 위태롭게 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기 속에서도 키리바시인들은 노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노래의 중심에 ‘테 카이마토아(Te Kaimatoa Singing Festival)’가 있습니다. 이 축제는 키리바시의 전통적인 합창문화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연례 축제로, '카이마토아'란 ‘기억하는 자’라는 뜻의 현지어입니다. 이는 단순히 음악 행사가 아닌, 기억의 전승, 조상의 이야기, 섬 공동체의 역사와 생존방식을 담아내는 구술 문화의 살아 있는 형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축제는 도시화로 인해 사라져가던 민속 노래들을 복원하고, 어린 세대에게 이를 전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축제는 주로 교회 또는 공터, 해변 무대에서 열리며, 각 마을의 합창단이 참가하여 독창적인 전통 노래, 즉 ‘테 애우(Te Aeou)’를 부릅니다. 이 노래들은 모두 아카펠라로 불리며, 단순한 멜로디 이상의 화음 구조와 몸의 움직임을 포함한 복합적인 퍼포먼스를 이룹니다.
공명하는 공동체, 노래로 지켜내는 문화
‘테 카이마토아’는 키리바시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입니다. 축제 참가자들은 각 마을을 대표하는 팀을 구성하고, 수개월 전부터 연습에 돌입합니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단지 가창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정체성과 기원을 드러내는 성명이며, 그 안에는 조상 숭배, 바다 생활, 생존기술, 섬의 신화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전통 노래의 구성은 독특합니다. 주로 남성 저음부가 기본 구조를 만들고, 여성의 고음이 하늘을 찌르듯 떠오르는 화음을 이룹니다. 때로는 목소리뿐 아니라 손뼉, 발구르기, 몸 흔들기 등으로 리듬을 보완하는데, 이는 키리바시의 ‘바디퍼커션 문화’의 핵심입니다. 악기가 부족했던 과거의 지혜가 현재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는 셈입니다. 축제의 클라이맥스는 ‘타누라와(Tanurawa)’라는 즉흥 노래 경연입니다. 이는 즉석에서 제시된 주제(예: 해양 보호, 기후 위기, 가족, 기억 등)에 대해 3분간 창작 노래를 만들어 발표하는 방식으로, 참가자들의 창조력과 즉흥성을 시험하는 무대입니다. 이 무대를 통해 키리바시인들은 단순히 전통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늘날의 언어로 다시 쓰며 미래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관람객들 역시 수동적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거나 함께 후렴구를 부르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무너지는 공동체적 음악의 본질을 실현합니다. 이를 통해 축제는 하나의 ‘음악적 민주주의’의 장이 되며, 모든 이가 문화의 주체가 됩니다.
노래는 섬의 벽이자 날개이다
기후 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 키리바시의 ‘테 카이마토아 축제’는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의 외침이자, 사라질 수 없는 기억의 저항이며, 물 위에서도 가라앉지 않는 정체성의 노래입니다. 이 축제를 통해 키리바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며,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강화합니다. 세계 각국에서는 전통이 사라져가고 있고, 문화가 빠르게 소비되고 있지만, 키리바시는 노래로 버텨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노래는 종이도, 인터넷도 필요 없는 기억의 도서관이며, 매해 이어지는 축제는 그 도서관을 다시 정리하고 정비하는 시간입니다. ‘테 카이마토아’는 그 이름처럼, ‘기억하는 자’의 축제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물 위에서 더 또렷이 울립니다. 우리가 그 노래를 들을 때, 우리는 단지 멜로디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향한 한 국가의 메시지를 듣는 것입니다. 섬은 작지만, 그 노래는 세계를 가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키리바시가 노래를 멈추지 않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