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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꽃 십자가, 에리트레아 ‘마스켈’ 축제의 신성한 불꽃

by clickissue 2025. 7. 27.

 

불타는 꽃 십자가, 에리트레아 ‘마스켈’ 축제의 신성한 불꽃

에리트레아의 ‘마스켈(Meskel)’ 축제는 매년 9월, 십자가의 발견을 기리는 기독교 전통에 따라 수천 명이 모여 ‘데메라(Demera)’라 불리는 꽃과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불태우는 의식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니라, 공동체의 정체성과 신앙, 전통을 하나로 잇는 영적인 문화유산입니다. 노란 꽃, 북소리, 기도, 노래, 행진이 어우러진 이 장면은 에리트레아 사람들의 뿌리 깊은 신앙과 공동체 정신을 상징합니다.

불꽃으로 피어나는 믿음의 상징, 에리트레아 마스켈 축제

에리트레아는 아프리카 동북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지만, 그 역사와 문화는 웅장하다. 특히 에티오피아와 더불어 공유하는 고대 기독교 전통은 이 지역에서 수천 년간 이어져 왔으며, 그중에서도 ‘마스켈(Meskel)’ 축제는 에리트레아 민중의 신앙과 공동체 의식을 집약한 상징적인 행사로 손꼽힌다. 매년 9월 27일경(에티오피아 정교회력 기준) 열리는 이 축제는, 십자가의 진실한 발견을 기리는 성 헬레나의 전설에 기초하고 있으며, 에리트레아 정교회는 이를 하나의 국가적 전통으로 정착시켜 왔다. 마스켈의 중심은 ‘데메라(Demera)’라는 의식이다. 이는 건초, 노란 메스켈 꽃, 나뭇가지 등으로 만든 거대한 십자가를 세운 뒤, 이를 정교한 예식 속에서 점화하여 태우는 행위다. 이 불꽃은 단순한 화염이 아닌, 죄의 정화, 신의 인도, 공동체 재탄생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함께 모여 불꽃을 지켜보며 기도와 노래를 올리는 모습은, 신앙과 문화가 하나로 융합되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이 축제는 도시 중심 광장에서 시작되어, 노란 메스켈 꽃을 손에 든 사람들이 행진하며 축제장을 가득 메운다. 여성들은 전통 백의 ‘슈마(Shuma)’를 입고 머리를 수건으로 덮은 채, 소리 없는 기도로 참여하고, 남성들은 북을 치며 리듬을 이끈다. 성가대의 찬송, 성직자의 축복, 그리고 함께 나누는 음료와 음식은 이 행사가 단지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통합과 화해, 정체성 재확인의 장임을 보여준다.

십자가의 불꽃과 공동체의 재탄생

마스켈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데메라’ 의식이다. 이는 어둠이 깔릴 무렵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십자가 모양의 거대한 장작 구조물에 노란 메스켈 꽃이 장식되고, 그 주변엔 기도문을 외우는 신자들,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 그리고 축복의 말을 전하는 성직자들이 둥글게 모인다. 점화 순간이 다가오면 모두가 숨을 죽이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이를 바라보며 지난 1년 동안의 죄와 고통, 갈등이 불에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동시에 그 불꽃을 통해 신의 은총과 축복이 새롭게 시작되기를 바란다. 많은 이들은 이 불을 보며 눈물을 흘리거나,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기도한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그 불 주변을 돌며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데, 이는 삶의 순환과 공동체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이 축제는 단지 기독교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 다양한 종족과 지역, 세대를 하나로 묶는 상징적인 통로로 작용한다. 에리트레아는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다문화 국가이며, 정치적 긴장과 사회적 갈등 속에서도 마스켈 축제는 유일하게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평화의 시간이 된다. 축제 기간 동안은 전통음식인 ‘즈그니(Zigni, 매운 고기 스튜)’와 ‘인제라(Injera, 발효된 납작빵)’가 곳곳에서 나눠지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함께 음식을 나누며 공동체의 유대를 확인한다. 종교적인 의미 외에도, 마스켈은 사람들 간의 거리감을 줄이고, 새로운 출발을 가능케 하는 문화적 장치로 기능한다.

전통과 신앙이 만든 불멸의 시간

마스켈 축제는 에리트레아 사람들에게 있어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의례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믿음이며, 내일을 위한 희망의 불씨다. 불타는 십자가는 조상들의 믿음과 피로 쌓아온 역사이며, 매년 되풀이되는 의식은 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한 반복이다. 오늘날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많은 전통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마스켈은 그 흐름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다. 그것은 단순히 종교나 문화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불꽃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정화와 환희, 희망과 감동이 서려 있다. 이 축제는 ‘불의 의식’이라는 외형을 넘어서, ‘사람이 사람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자, ‘공동체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불꽃은 매년 같은 자리에 피어나, 세월과 세대를 넘어 ‘신앙’과 ‘전통’을 잇는 불멸의 언어가 된다. 결국 마스켈은 신과 인간, 전통과 현재, 개인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불은 타고 사라지지만, 그 의미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남는다. 그것이 바로 마스켈이 지속되는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