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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전통의 농민 축제, 몰타의 ‘임나리야’에서 살아 숨 쉬는 문화

by clickissue 2025. 7. 27.

 

백년 전통의 농민 축제, 몰타의 ‘임나리야’에서 살아 숨 쉬는 문화

몰타의 여름을 알리는 전통축제 ‘임나리야(Imnarja)’는 농민과 시민이 하나 되어 음악, 음식, 동물 경주, 민속 노래로 어우러지는 몰타 최대의 문화행사 중 하나다. 성 베드로와 바울을 기리는 이 축제는 몰타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상징하며, 전통이 단지 보존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임을 보여준다. 라바르나 공원의 불빛 아래 펼쳐지는 이 성대한 축제는 몰타 민속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다.

라바르나 숲에서 피어나는 몰타인의 자긍심, 임나리야

몰타는 지중해 중앙에 위치한 작지만 유서 깊은 나라로, 수많은 전통과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이 작은 섬나라의 여름밤을 가장 뜨겁게 물들이는 행사 중 하나가 바로 ‘임나리야(Imnarja)’ 축제이다. 이 축제는 매년 6월 29일, 몰타섬 중앙에 위치한 라바르나 숲(Lascaris Barracks Forest)에서 열린다. 이름부터 독특한 이 축제는 ‘빛의 축제’를 의미하며, 몰타인의 정체성과 민속 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전통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임나리야는 원래 몰타 정교회의 중요한 기념일인 ‘성 베드로와 성 바울의 날’을 기리기 위한 종교 의식에서 유래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점차 농민과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일상의 전통과 민속을 함께 나누는 세속 축제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는 단지 종교적 기념일이 아니라, 몰타 농민들의 수확과 풍요를 축복하고, 공동체 전체가 연대와 환희를 나누는 살아 있는 문화 유산으로 발전해왔다. 이날 라바르나 숲은 몰타 전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 찬다. 전통 복장을 입은 민속 악단, 소를 몰고 나타나는 농부들, 치즈와 와인, 구운 토끼요리를 파는 노점상들, 동물 경주와 라이브 민속 음악 등은 그야말로 몰타인의 삶과 문화가 총망라된 현장이 된다. 특히 밤이 깊어질수록 불빛이 켜지고, 민속 노래 ‘그한나(Għana)’가 울려 퍼지며 숲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공연장으로 변한다. 이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몰타인 각자의 기억과 역사를 공유하는 장이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문화 그 자체이다.

음식, 음악, 전통 경주로 빛나는 밤

임나리야 축제는 몰타 전통문화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낮부터 시작되는 이 축제는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며, 몰타 농민들의 삶의 리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몰타의 전통 음식과 민속 음악이다. 먼저 축제의 대표 음식은 몰타 전통 토끼 스튜인 ‘펜네카 타르 파르네’(fenek tal-fenek)이다. 허브와 레드 와인으로 천천히 조리한 토끼고기는 깊은 풍미를 자랑하며, 치즈 ‘기베나(Gbejna)’와 함께 제공된다. 이 음식은 단지 먹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몰타 농민들의 조리 방식과 자연 친화적인 생활 방식을 상징한다. 이를 나눠 먹는 행위는 공동체의 유대감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또한 음악 공연은 축제의 핵심 중 하나다. 몰타 전통 민속가요 ‘그한나’는 주로 남성들이 연주하며, 삶의 애환, 농사의 기쁨, 사랑과 이별 등을 시적인 형태로 노래한다. 이 음악은 단지 듣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따라 부르고 박수를 치며 즐기는 형태로 전개된다. 음악은 삶이고, 축제는 곧 공동체의 무대인 셈이다. 저녁이 되면 동물 경주가 펼쳐진다. 말, 당나귀, 황소 등 다양한 동물들이 농민들과 함께 출전하며, 아이들과 관광객들의 큰 환호를 받는다. 이 경주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농경 문화와 인간-동물 간 관계를 축하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더불어 전통 의상 콘테스트, 민속 무용 공연, 구전 이야기 낭독 등이 이어지며 몰타 전통의 다채로운 면모가 드러난다. 임나리야의 밤은 그 어떤 파티보다 진하고 깊다. 전통등불과 초가 하나씩 켜지고,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옛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이는 조용히 기도하고, 어떤 이는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이 모든 행위는 몰타인의 삶을 축복하는 의례이자 공동체의 본질을 확인하는 신성한 시간이다.

잊혀지지 않는 여름밤의 기억, 살아 있는 전통

임나리야 축제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축제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몰타인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를 어떻게 계승하고 확장해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형식이다. 이 축제의 가장 큰 힘은, 각기 다른 세대와 배경을 가진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음식, 같은 노래, 같은 불빛 아래에서 공감하고 연결된다는 사실에 있다. 많은 나라의 전통축제가 점차 상업화되고 본래 의미를 잃어가는 가운데, 임나리야는 여전히 지역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 준비하고 진행한다. 이는 단지 이벤트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문화적 기억이자 정체성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몰타 사람들은 이 축제를 통해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또한 임나리야는 외부인에게도 매우 인상 깊은 체험을 제공한다. 몰타를 방문하는 이방인들은 이 축제를 통해 단지 관광지가 아닌, 몰타인의 삶 그 자체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는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감동을 주며, 문화가 어떻게 인간을 묶고 위로하며 살아가게 하는지를 직접 경험하게 만든다. 라바르나 숲의 밤하늘 아래, 불빛이 흔들리고 음악이 흐를 때, 우리는 모두 같은 리듬에 몸을 맡긴다. 몰타의 임나리야는 그렇게 ‘하나의 여름밤’을 넘어, ‘삶의 태도’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다음 세대에게로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