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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불꽃 아래 춤추는 불령의 날, 라오스 ‘분 방파이 축제’ 이야기 (불의의식,불꽃의례,정화)

by clickissue 2025. 7. 29.

밤의 불꽃 아래 춤추는 불령의 날, 라오스 ‘분 방파이 축제’ 이야기 (불의의식,불꽃의례,정화)

라오스의 전통 축제 ‘분 방파이(Boun Bang Fai)’는 불꽃놀이와 함께하는 신성한 불의 제의로, 농사의 풍요와 하늘의 신에게 바치는 기원을 담고 있다. 대나무 로켓과 전통 무용, 지역민들의 제의적 놀이가 어우러진 이 축제는 단순한 시각적 흥분을 넘어 자연과 인간, 신성과 공동체의 관계를 재확인하는 성스러운 시간이다.

하늘로 쏘아 올리는 염원의 불꽃

라오스는 불교 국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안에는 고대 정령 신앙과 토착 제의가 여전히 깊게 스며 있다. 그 대표적인 전통 축제가 바로 매년 우기에 접어드는 시기인 5월에서 6월 사이에 열리는 ‘분 방파이(Boun Bang Fai)’, 일명 로켓 축제다. 이 축제는 단순히 여흥이나 놀이의 차원을 넘어서, 하늘의 신에게 비를 기원하고 농사의 풍요를 바라는 고대 제의에서 기원한 살아 있는 신앙의 실천이다. 분 방파이는 ‘불의 축제’로 불릴 만큼, 하늘을 향해 거대한 로켓을 쏘아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이 로켓은 보통 대나무로 제작되며, 그 안에 화약을 가득 채운 뒤 축제 당일 하늘을 향해 발사한다. 이는 하늘의 신인 ‘파야 타닌(Paya Thanin)’에게 인간의 염원을 전달하는 행위이자, 풍작과 강우, 평안을 비는 신성한 제의다. 마을마다 경쟁적으로 더 크고 멀리 나는 로켓을 제작하는데, 이는 단순한 기술 자랑이 아닌 신에게 바치는 정성의 척도이기도 하다. 이 축제는 라오스 전역, 특히 북동부 지방과 태국과의 국경 근처인 므앙 푼(Muang Phon), 비엔티안 주변 농촌 지역에서 활발히 진행되며, 축제 당일이 가까워질수록 마을 전체가 축제의 열기로 들썩인다. 사람들은 로켓을 준비하며 함께 음식을 나누고, 음악과 춤을 연습하고, 축제 당일 입을 전통 의상을 손질한다. 마을의 모든 구성원,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이 축제는 공동체 정신을 되새기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신과 인간의 계약, 불꽃 속 정화의식

분 방파이의 하루는 축제의 의식으로 시작된다. 마을 사원에서 승려들이 축복 의식을 집전한 뒤, 축제의 대장격인 로켓 제작자가 신의 이름을 부르며 하늘을 향해 첫 발사를 시행한다. 이 순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손을 모으고, 각자의 소원을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하늘로 솟구치는 첫 불꽃은 단순한 폭죽이 아니라 인간과 신의 교감을 상징하는 불의 사자다. 로켓 발사 외에도 사람들은 다양한 제의적 행사를 통해 정화를 시도한다. 마을을 돌며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는 ‘행렬 의식’은 악귀를 몰아내고 복을 부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둥근 원을 그리며 추는 춤은 ‘땅의 정령’을 달래는 춤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기원하는 무언의 언어다. 남성들은 로켓 운반 퍼레이드를 통해 신에게 자신들의 정성과 헌신을 과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축제에 유머와 풍자 요소가 함께 포함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마을에서 가장 무거운 로켓을 짊어지고 진흙탕에 빠지는 행위를 일부러 연출하거나, 로켓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도 웃으며 받아들인다. 이는 인간의 부족함과 유한함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라오스 특유의 낙천성과 관용의 미덕을 보여준다. 한편, 로켓 제작은 단순한 수공예가 아니다. 각 마을에는 수십 년간 로켓을 제작해온 장인들이 있으며, 이들은 화약의 배합과 로켓의 균형, 발사각의 과학적 설계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 현대 기술과 전통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 장인들은 전통의 계승자이자 지역 과학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하늘과 땅을 잇는 불의 계승

분 방파이 축제는 단순한 여흥의 장이 아니다. 그것은 불과 정화, 신성과 인간성, 공동체와 개인의 염원이 응축된 하나의 종합 예술이며, 신과 인간의 계약을 매년 갱신하는 ‘불꽃의 의례’다. 하늘로 치솟는 불빛은 단순히 시각적 쾌감이 아니라, 삶의 불확실성과 맞서는 용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태도의 상징이다. 라오스 사람들에게 이 축제는 삶의 리듬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축제를 통해 사람들은 지난 해의 실수와 슬픔을 불꽃에 태워 보내고, 새로운 해의 평안을 기원하며 자신을 정화한다. 그리하여 축제는 단지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끊임없는 재창조와 미래를 향한 염원의 발현으로 작동한다.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는 이 축제는 생태학적 가치와 인류학적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자연을 경외하며 인간의 욕망을 성찰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하며 전통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문화 유산인 것이다. 하늘로 쏘아 올린 로켓은 단지 하나의 물체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신과 맺은 약속의 불꽃이다. 그 불꽃이 사라진 자리에는, 조용히 남겨진 재와 함께 새로운 삶의 씨앗이 뿌려진다. 그것이 바로 분 방파이의 진정한 의미이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불의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