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루에서 열리는 ‘앙가문가 석판 축제(Angamunga Stone Festival)’는 바위에 새긴 상형문자를 통해 조상과 자연, 신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신성한 문화 행사입니다. 전통 춤, 석판 의례, 달빛 아래의 만가 의식이 어우러진 이 축제는 작지만 깊은 정신성과 공동체의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으로, 태평양 섬나라 문화의 본질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돌을 통해 이어지는 기억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나우루는 면적 21제곱킬로미터, 인구 약 만 명의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작은 독립국이다. 하지만 이 작은 나라에는 거대한 문화적 심장이 뛰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앙가문가 석판 축제(Angamunga Stone Festival)’라 불리는 독특한 전통 의례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지역행사가 아니라 조상과 후손, 자연과 인간, 신과 사람의 연결고리를 상징하는 신성한 축제로, 나우루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앙가문가는 현지어로 ‘다시 부름을 받은 시간’을 뜻하며, 그 의미처럼 이 축제는 잊혀가는 기억과 연결을 다시 불러오는 시간이다. 석판은 나우루의 선조들이 바위에 새긴 고대 상형문자 혹은 기호이며, 조상들과 신령들의 메시지를 담은 매개체로 여겨진다. 이 석판은 자연 바위와 절벽, 마을 중앙 광장에 세워진 제단 등에 놓이며, 특별한 의식과 함께 해독되고 전해진다. 축제는 매년 9월 보름달이 뜨는 날에 열린다. 이 시기는 자연이 가장 충만하고, 바다의 정령들이 깨어난다고 여겨지는 신성한 주기로, 사람들은 이 날을 ‘달의 입’이라 부른다. 축제 전날 밤부터 나우루 전역의 가정에서는 조상의 석판을 꺼내 손으로 닦고, 코코넛 오일을 바르며 정성을 다해 정화한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기억과 정체성의 유물로서의 예우다. 이처럼 축제의 시작은 조상의 언어를 되살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 언어는 춤과 노래, 돌과 상징, 그리고 사람들의 몸짓을 통해 재현된다. 나우루의 작은 땅은 이 축제의 시간 동안 거대한 문화적 영토로 확장되며, 섬나라 사람들의 영혼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긴 호흡을 시작한다.
돌에 새겨진 신의 시, 그리고 인간의 춤
앙가문가 축제의 핵심은 바로 ‘석판 해독 의식’이다. 축제 당일 아침, 섬 중앙의 ‘아이와 광장’에 모든 마을 사람들이 모인다. 마을 장로들은 가문마다 대대로 전해 내려온 석판을 들고 나와, 신성한 순서에 따라 광장 중앙에 이를 진열한다. 이어 사제들은 백색 옷을 입고, 조용히 바위 앞에 무릎 꿇고 기도를 올린다. 그 기도는 바람, 파도, 하늘, 그리고 석판 속 기억에 바치는 것이다. 그 후 장로는 돌에 새겨진 상형기호를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으며, 그 의미를 낭독한다. 어떤 것은 가문의 탄생, 어떤 것은 전쟁의 기억, 어떤 것은 신이 내린 예언이다. 청중은 숨을 죽이고 이를 듣고, 눈을 감고 각자의 조상과 내면의 정령을 상기한다. 이 의식은 조상의 지혜를 이어받고, 자연의 질서와 공존을 다시 되새기는 깊은 명상적 시간이다. 의식이 끝나면 석판 주위로 원형 무대가 만들어지고,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몸에 바다 조개를 두르고, 황토로 얼굴을 칠한 채 천천히 돌 주위를 돌며 춤을 춘다. 이 춤은 돌에 새겨진 이야기를 몸으로 번역하는 ‘살아 있는 기록’이며, 각 동작은 바람의 흐름, 조상의 발자국, 태양의 주기 등을 상징한다. 춤은 빠르지 않다. 오히려 고요하고 느리며, 자연의 시간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또한 축제 후반에는 아이들과 청소년이 참여하는 ‘석판 그림 새기기’ 시간이 마련된다. 이는 전통 상형문자를 현대식 기호와 조합하여 자기만의 석판을 새기는 활동으로, 새로운 세대가 기억을 어떻게 재해석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업은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문화의 진화이며 계승이다. 매년 이 그림은 섬 북부 절벽에 새겨져, 바람과 태양에 씻기며 자연 속에 스며든다. 밤이 되면 마지막 의식인 ‘달의 노래 만가’가 시작된다. 모든 섬 주민이 해안에 모여 달을 향해 노래를 부르며, 석판을 다시 가정으로 들고 돌아간다. 달빛 아래 울려 퍼지는 그 노래는 말 그대로 ‘신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이 순간, 축제는 절정을 넘어서 신성과 인간의 경계를 허문다.
작은 돌 하나에 새겨진 거대한 문화의 숨결
앙가문가 석판 축제는 나우루의 땅이 비록 작고 외진 섬일지라도, 그 속에 깃든 문화와 정신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석판은 단순한 돌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조각이며, 조상의 목소리이며, 자연과 함께 살아온 공동체의 철학이 새겨진 경전이다. 이 축제를 통해 사람들은 단절된 과거와 현재를 잇고, 사라질 위기에 놓인 언어와 상징을 되살린다. 석판 하나하나는 작은 도서관이며, 하나의 무언의 시집이다. 거기에는 나우루인들의 역사와 상처, 꿈과 기도가 녹아 있다. 그들은 이 돌을 통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고, 세상을 해석하고, 미래를 설계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빠르게 흘러가는 정보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 축제는 우리에게 말한다. 진짜 중요한 기억은 느리게 다가오며, 형태 없는 상징으로 남아야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다고. 나우루의 석판은 단단하고, 조용하며, 오래 남는다. 그것이 진정한 문화의 힘이다. 앙가문가 축제는 단순한 전통의 보존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기억의 실천’이다. 이 작은 섬에서 울려 퍼지는 석판의 울림은 오늘날 모든 인류에게 말하고 있다. 기억하라. 잊지 말라.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돌처럼 단단한 문화를 남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