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제도의 '파나 파나 축제(Pana Pana Festival)'는 남태평양 전통 카누 문화와 항해술을 기리는 해양 공동체 중심의 축제로, 나무를 깎아 만든 전통 카누 퍼레이드와 춤, 노래, 전통 어업 시연, 부족 간 교류 등이 펼쳐집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민족의 기억과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은 장대한 문화 행사입니다.
목재를 깎는 손끝에서 시작되는 해양의 신화
‘파나(Pana)’는 솔로몬 제도 현지어로 ‘카누’를 의미하며, ‘파나 파나’는 그 카누가 물 위에 떠 다닐 때 나는 소리를 형상화한 의성어이다. 이 축제는 바다와 함께 살아온 섬 주민들의 정체성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문화행사로, 매년 솔로몬 제도의 인접 섬들—특히 라나이 섬과 말라이타 섬, 구아달카날 섬의 부족들이 순번제로 개최한다. 솔로몬 제도는 9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섬들은 오랜 세월 동안 카누로만 오갈 수 있었다. 때문에 카누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생존의 도구이며, 공동체의 상징이고, 조상과 정령이 깃든 영적 유산으로 간주된다. ‘파나 파나 축제’는 바로 이 카누 문화를 중심으로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삶의 이야기를 집단적으로 재현하고 기리는 의례적 축제이다. 축제는 해안가에서 진행되며, 주민들은 수개월 전부터 직접 나무를 고르고, 전통 도구로 카누를 깎으며, 부족 고유의 문양과 깃발로 배를 장식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전승을 넘어, 공동체 협동과 세대 간 지식 이전의 의미를 갖는다. 이 과정 자체가 축제의 일부이며, 카누는 이제 단지 이동 수단이 아닌 ‘의례의 주체’가 된다. '파나 파나'라는 이름처럼, 이 축제는 물 위에 떠서 울리는 목선의 리듬과 함께 시작된다. 나무가 물을 가르며 나아갈 때, 사람들의 기억도 조상들의 항해와 삶을 따라 흐르기 시작한다.
노와 바람, 가슴으로 항해하는 공동체
축제의 핵심은 ‘카누 퍼레이드’이다. 각각의 부족은 저마다 고유한 문양과 깃발, 색채로 꾸민 전통 카누를 타고 바다를 가르며 입장한다. 이 카누는 동력을 쓰지 않으며, 오직 사람의 손과 바람만을 이용해 움직인다. 참가자들은 전통 복장을 입고, 붉은 진흙으로 얼굴을 칠하거나 바다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목걸이를 걸고 있다. 해안가에 도착하면, 부족장은 상징적 제사를 지내며 땅과 바다의 정령에게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이후에는 전통 어업 시연이 이어지는데, 이는 선조들이 어떻게 물고기를 잡고, 어떻게 해류를 읽고, 어떤 방식으로 바다를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교육의 장이다. 춤과 음악도 중요한 부분이다. ‘아리리 아리리(Ariri Ariri)’라는 노래는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정령에게 바치는 노래로, 깊고 낮은 음의 반복이 파도 소리와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부족마다 사용하는 북과 나무피리, 조개피리 소리도 다르며, 이 소리들이 섞이면 하나의 거대한 해양 교향곡처럼 들린다. 또한 축제 기간 동안엔 다양한 해양 기술 경연이 열린다. 조개를 이용한 뜰채 제작, 망그로브 뿌리에서 염색물 추출, 야간 항법 훈련 등이 이뤄지며, 아이들과 젊은 세대는 이를 통해 삶의 기술을 전수받는다. 이 모든 행위는 생존을 위한 기술이자,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상징적 언어로 기능한다. 부족 간 교류 또한 축제의 핵심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들이 이 축제를 통해 화합하고, 혼인을 연결하며, 자원을 나누기도 한다. 카누라는 ‘공동의 탈 것’이 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상징이 되는 것이다.
물 위의 기억, 정체성의 뿌리
‘파나 파나 축제’는 단순한 전통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물 위에서 태어나고, 물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 그 자체를 예술과 의례, 기술과 정령의 언어로 표현한 집합적 무대이다. 카누를 타고 퍼레이드하는 것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삶의 서사’를 당당히 선포하는 행위다. 이 축제를 통해 솔로몬 제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한다. 기계화된 문명과 외부 자본이 점점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전통 항해술과 해양 지식을 지키며 스스로의 삶을 정의하고 있다. 이는 단지 보존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성의 선언이다. 특히, 아이들이 직접 배를 만들고 바다에 나아가는 장면은 축제의 백미다. 그 순간, 기술은 전수가 되고, 공동체는 지속되며, 바다는 다시금 인간을 품는다. 이는 살아 있는 유산이자, 미래를 향한 가장 확실한 항로다. 파나 파나는 결국 묻는다. “너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그 대답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나무를 깎고 노를 젓는 손끝에서,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카누에서, 조용히 흐르는 파도 소리에서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