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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초원에 되살아나는 생명의 노래, 카자흐스탄 ‘나우르즈 메이’ 축제의 전통과 정신

by clickissue 2025. 7. 27.

 

끝없는 초원에 되살아나는 생명의 노래, 카자흐스탄 ‘나우르즈 메이’ 축제의 전통과 정신

카자흐스탄의 ‘나우르즈 메이рамы(Nauryz Meyrami)’는 매년 3월 21일, 춘분에 맞춰 열리는 국가 최대의 전통 축제로서, 자연과 인간, 과거와 미래, 공동체의 조화를 상징하는 신성한 날이다. 이 축제는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목 민족의 자연 숭배와 조상 숭배, 그리고 계절의 순환을 기리는 의식으로 구성되며, 전통 음식 나우르즈 코제, 카자흐 전통 놀이, 말 타기 경기, 의례적 화해와 용서의 관습까지 포함하여 공동체의 화합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단지 명절이 아닌 삶의 순환을 이해하고 축복하는 철학이 담긴 날이다.

생명의 기운이 되살아나는 날, 초원 위에 울려 퍼지는 나우르즈의 노래

3월 21일, 북반구에서는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 날은 카자흐스탄에서는 단순한 계절의 전환점을 넘어, 민족의 영혼과 정체성이 되살아나는 축제의 날, ‘나우르즈 메이рамы(Nauryz Meyrami)’로 맞이된다. ‘나우르즈’는 페르시아어로 ‘새로운 날’을 뜻하며,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이 축제는 고대 유목민들의 자연 숭배와 농경사회 전환기의 신화적 감수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카자흐스탄에서 나우르즈는 단순한 새해맞이 명절이 아니다. 그것은 겨울을 이겨낸 생명에 대한 경의이며, 얼어붙은 땅에서 다시 피어나는 풀과 물, 인간과 가축의 생존을 축복하는 거대한 공동체의 기원이다. 이 날은 사람과 사람, 가족과 마을, 부족과 부족이 서로의 갈등을 풀고, 용서를 베풀며, 새롭게 연결되는 날로 여겨진다. 그래서 나우르즈는 단지 시간의 시작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자 삶의 재건이기도 하다. 도시에서든 농촌에서든, 카자흐인들은 전통 의상을 입고 광장에 모인다. 마을 여성들은 하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남성들은 ‘치펜’이라는 길고 화려한 가죽 외투를 걸친다. 아이들은 손에 국기를 들고 전통 악기 ‘돔브라’ 소리를 따라 노래를 부르고, 광장 곳곳에는 이동식 천막 ‘유르트’가 설치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유르트 안에는 귀한 손님을 위해 전통 음식과 음료가 차려지고, 사람들은 하루 종일 춤추고 노래하며 계절의 순환과 생명의 귀환을 기린다. 나우르즈는 종교적 신앙이 아닌 민족적 영성에 기반한 축제다. 카자흐 민속 속에서는 이 날 하늘이 열리고 조상이 땅을 방문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조상들의 무덤을 찾고, 기도를 드리며, 이들의 삶을 기리는 의례가 이어진다. 마을 장로는 젊은이들에게 조상의 지혜를 이야기하고, 가문마다 서로의 평안을 기원하며 선물을 나눈다. 이는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현재의 공동체가 과거와 연결되는 상징적 행위이다.

전통 음식과 놀이, 그리고 화해의 의식이 어우러지는 하루

나우르즈 축제의 중심에는 ‘나우르즈 코제(Nauryz Kozhe)’라는 전통 음식이 있다. 이는 일곱 가지 재료로 만드는 발효죽으로, 우유, 소금, 밀, 쌀, 물, 고기, 기름 등 생존을 위한 필수 자원을 상징한다. 이 일곱 재료는 각각 하늘, 땅, 불, 물, 바람, 생명, 풍요를 의미하며, 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새해의 복을 나누는 행위이자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신성한 의식이다. 축제는 음식을 넘어 말 타기 경기, 씨름, 전통 놀이 ‘알티 바칸’, 돔브라 연주 대회 등으로 이어진다. 남성들은 전통 스포츠로 힘과 용기를 겨루고, 여성들은 화려하게 수놓은 전통복을 입고 춤을 춘다. 이 모든 행위는 단지 오락이 아닌,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삶의 리듬을 되살리는 예식으로 여겨진다. 또한 나우르즈에는 매우 독특한 전통이 있는데, 바로 ‘화해의 날’이다. 오랫동안 다툰 가족이나 이웃이 이날만큼은 찾아가 사과하고, 선물을 건네며, 다시 인연을 맺는 것이다. 법적으로 강제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카자흐인들은 이 날을 갈등 해소의 기회로 삼으며 ‘용서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공동체 정신을 실천한다. 학교와 공공기관도 이날은 문을 닫고, 시민 모두가 축제에 참여한다. 도시에서는 전통 마켓이 열리고, 시청 광장에서는 대규모 공연과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은 유르트에 들러 나우르즈 코제를 시식하고, 민속 공연을 관람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렇게 나우르즈는 도시와 초원, 세대와 세대를 잇는 시간의 다리가 되어 카자흐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각인시킨다.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시간, 나우르즈가 남긴 울림

카자흐스탄의 나우르즈 메이라미는 단지 계절의 시작을 기념하는 축제를 넘어서, 민족 정체성과 공동체 가치, 자연과 인간의 화합을 하나의 서사로 담아낸 문화적 대서사시다. 유목민의 삶과 농경사회의 순환적 시간관, 그리고 근대 도시국가로 이행한 현재의 카자흐스탄이 만나는 그 접점에 바로 나우르즈가 존재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분열과 단절의 시대에, 나우르즈가 보여주는 공동체 중심의 연대와 용서, 화해의 정신은 전 세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특정 종교나 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본연의 삶의 순환과 공존을 기리는 축제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우르즈는 카자흐인만의 축제가 아니라, 세계인 모두가 배워야 할 정신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초원 위에서 시작된 이 작은 의식이, 오늘날에는 국제연합(UN)에서도 인정받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그 문화적 영향력은 확장되고 있다. 무형의 가치들이 사라지는 오늘, 카자흐스탄은 나우르즈를 통해 자신들의 뿌리를 지키고, 미래 세대에게도 이 정신을 온전히 전하고자 한다. 결국, 나우르즈는 인간의 삶이 자연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공동체의 본질적 가치를 되새기는 축제다. 따뜻한 햇살과 바람, 돔브라 소리와 나우르즈 코제의 향기 속에서 우리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조상과 후손이 하나 되는 장면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날’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