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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에 울려 퍼지는 노래 조지아의 랄레타 축제 (다성음악,영성,공동체결속)

by clickissue 2025. 8. 5.

고요한 밤에 울려 퍼지는 노래 조지아의 랄레타 축제 (다성음악,영성,공동체결속)

조지아(Georgia)의 랄레타(Laleta) 축제는 전통적인 다성음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영적 문화행사로, 마을 공동체가 밤하늘 아래 모여 고대 조상의 화음을 되살리는 장엄한 축제입니다. 세 사람 이상의 목소리로 구성된 조지아의 다성음악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도 지정되었으며, 이 축제는 그 음악의 깊이와 정서를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장입니다. 랄레타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조상의 혼과 현재의 삶을 연결하는 노래로서, 조지아인의 정체성과 공동체 결속을 새롭게 확인하는 계기가 됩니다.

조지아의 밤을 수놓는 고대 화음, 랄레타의 시작

조지아는 흑해와 카프카스 산맥 사이에 위치한 나라로, 고대부터 이어져온 독특한 음악 문화와 종교적 전통으로 깊은 정신성을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랄레타 축제는 조지아의 전통 다성음악(Polyphonic Singing)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문화행사로, 매년 가을, 수확이 끝난 마을에서 조용히 개최됩니다. ‘랄레타(Laleta)’라는 이름은 조지아 고어로 ‘멀리서 부르다’ 혹은 ‘하늘에 닿는 노래’를 의미하며, 그 의미 그대로 조상의 영혼과 신에게 닿기를 바라는 기도이자 찬가로서 기능합니다. 이 축제는 대규모 행사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 단위로 열리며, 전통 가옥의 안뜰이나 성당 앞마당, 산 중턱의 작은 예배당에서 자정에 가까운 시각에 조용히 시작됩니다. 이 축제는 외부인에게는 낯설고 이질적일 수 있지만, 조지아인들에게는 조상의 언어를 계승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깊은 의례입니다. 노래는 단지 음을 맞추는 행위가 아니라, 시간과 영혼을 잇는 길이며, 한 마을의 역사와 감정을 응축한 언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랄레타는 단순한 축제가 아닌 조지아 민족의 살아 있는 정체성을 반영한 성스러운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지아 다성음악의 구조와 축제의 전개 방식

조지아의 다성음악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음악 체계입니다. 일반적으로 세 명 이상의 성부가 각기 다른 멜로디를 부르되, 조화를 이루는 구조로, 이 음악은 특별한 악기 없이 오직 인간의 목소리로만 이루어집니다. 하모니는 단순한 음률이 아니라, 조상의 말, 기도, 정서를 품고 있으며, 목소리를 내는 자와 듣는 자 모두에게 강한 정화의 경험을 제공합니다. 랄레타 축제는 보통 오후 늦게 시작되어 밤중까지 이어지며, 참여자들은 음식을 나누고 촛불을 밝힌 채 조용한 대화를 나눈 후, 본격적인 합창이 시작됩니다. 합창은 보통 두 명의 베이스가 화성의 뿌리를 잡고, 한 명의 테너가 선율을 인도하며, 고음부가 영적인 울림을 더합니다. 모든 노래는 무반주로 진행되며, 자연의 울림, 새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랄레타의 주요 곡 중 하나인 ‘첸스’(Chens)는 죽은 조상에게 보내는 노래로, 집안 어른들이 부르며 손자와 손녀가 화음을 맞추는 장면은 감동을 자아냅니다. 이러한 노래는 단순한 음악적 행위가 아니라, 조상과 살아 있는 이들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시 만나는 교차점이 됩니다. 그 외에도 ‘모크렐리(Mokreli)’나 ‘샤베랄리(Shaverali)’와 같은 곡은 각 지역마다 다른 리듬과 화성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지역 정체성을 반영한 음악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축제에는 전통 복식을 갖춘 노인과 아이들, 젊은이들이 함께 참여하며, 세대를 초월한 화음이 울려 퍼지는 그 순간, 공동체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입니다. 노래 사이사이에는 옛날 조지아 신화와 역사 이야기가 구전되고, 공동체는 마치 하나의 목소리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소통을 이어갑니다.

조상의 목소리, 오늘의 노래, 내일의 울림

랄레타 축제는 소리라는 매개를 통해 공동체의 뿌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독특한 의식입니다. 조지아 다성음악의 울림은 단지 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의 깊은 곳을 어루만지는 도구이며, 이 음악은 세대를 넘나드는 유산으로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문화가 상업화되고 표준화되어가는 흐름 속에서도, 조지아의 랄레타는 그 고유한 형식을 지키며 진정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조지아인들의 문화적 자부심이자 정체성의 뿌리이며, 랄레타가 단지 축제에 그치지 않고 삶의 방식, 공동체의 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 축제는 외부 세계와의 소통도 고려하여 일부 공연은 영상으로 기록되어 문화기관과 유네스코 등을 통해 보존되고 있으며, 조지아 청년들은 이 전통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계승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통을 지키되 시대와 소통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랄레타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문화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됩니다. 결국 랄레타는 ‘노래’를 통해 삶과 죽음, 조상과 후손,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장엄한 순간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오늘도, 조지아의 밤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