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나이의 대표적 이슬람 행사 ‘마울리두르 라술(Maulidur Rasul)’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경건한 축제로, 국가 주관 대규모 행진과 모스크 낭송회, 공동 식사, 자선 활동 등이 어우러집니다. 황금빛 모스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의식은 단지 종교적 행사가 아닌 국가 정체성과 신앙의 결속을 상징하는 장엄한 경험으로, 브루나이 사회의 중심적 문화 코드입니다.
황금빛 신앙의 날, 공동체가 걷는 기도의 행렬
동남아시아 보르네오 섬 북서쪽에 위치한 브루나이 다루살람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이슬람 왕정 국가입니다. 국토는 작지만, 석유 자원 덕분에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동시에 전통 이슬람 문화를 철저히 보존하는 나라로도 유명합니다.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종교 축제 중 하나가 바로 ‘마울리두르 라술(Maulidur Rasul)’입니다. 마울리두르 라술은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PBUH)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이슬람력 3월 12일에 해당하는 날에 열립니다. 브루나이에서는 이 날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고, 전국적인 종교 행사와 퍼레이드를 통해 무함마드의 삶과 가르침을 되새깁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 의식을 넘어 국민 전체가 하나가 되어 경건과 공동체성을 확인하는 상징적인 날입니다. 축제는 왕실 주관으로 시작되며, 술탄이 직접 참석하는 공식 의식과 대규모 거리 행진이 진행됩니다.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의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 앞은 이날 가장 주목받는 장소로, 황금 돔과 흰 대리석의 모스크는 수천 명의 신도들로 가득 찹니다. 사람들은 전통 의상인 바주 멜라유(Baju Melayu)를 갖춰 입고, 손에는 깃발이나 꾸란 구절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거리를 행진합니다. 이날의 행렬은 단지 이동이 아닌 ‘기도의 발걸음’이며, 이는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록)를 낭송하고 찬송을 부르는 종교적 수행의 의미를 가집니다. 행진은 다양한 단체 – 학교, 군대, 정부기관, 기업 – 가 모두 참여하며, 이는 사회 전체가 하나의 신앙 공동체로 결집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낭송과 자선, 신앙이 삶이 되는 시간
마울리두르 라술의 축제는 거리 행진뿐 아니라 다양한 영적 행위와 공동체 활동으로 이어집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모스크 내에서 열리는 '마울리드 낭송회'입니다. 이는 무함마드의 삶과 업적을 노래하는 아랍어 시편 형식의 찬송을 합창하는 행사로, 무슬림 남성 합창단이 꾸란 낭송과 결합된 곡을 선보이며, 신도들은 그 울림 속에서 내면의 정화를 경험합니다. 이 낭송은 단지 음악이 아니라, 예언자의 삶에 대한 교육이자 기도이며, 특히 청년들에게는 신앙을 체화하는 학습의 장입니다. 일부 낭송회에서는 예언자의 생애를 재연하는 극 형식의 시각적 공연도 포함되어, 전통과 현대가 결합된 교육적 방식으로 기능합니다. 또한 브루나이에서는 마울리두르 라술을 자선과 나눔의 날로 삼습니다. 정부 주도 하에 의료 봉사, 무료 급식, 고아원 방문 등이 이루어지며, 마을 단위로는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고, 혼자 사는 노인이나 저소득층 가정에 방문하는 문화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는 이슬람의 핵심 가치인 '자카트(자선)'를 실천하는 사회적 축제의 모습입니다. 축제 당일 저녁에는 대형 모스크에서 ‘두아 셰말(Dua Selamat)’이라 불리는 안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집단 기도가 열리며, 술탄과 왕실 가족, 고위 성직자, 각 부처 장관들이 함께 참석해 국가의 신앙적 단합을 상징합니다. 이 장면은 국민에게 강한 결속감을 주며, 마울리두르 라술이 종교를 넘어선 ‘국가적 의례’임을 보여줍니다.
무함마드의 길을 따르며, 하나 된 신앙의 국가
브루나이의 마울리두르 라술은 단순한 예언자의 생일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신앙 안에서 하나 되어 걷는 거룩한 여정입니다. 축제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형식으로 구성되며, 형식적 종교 의식을 넘어서 진정한 신앙적 체험으로 확장됩니다.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 국민으로서의 연대, 인간으로서의 겸손함을 되새기게 하는 이 행사는 브루나이인들의 삶 깊숙이 자리잡고 있으며, 해마다 더욱 성대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브루나이가 국가적 차원에서 종교를 삶의 중심에 둔다는 철학의 실천이며, 세계에서 보기 드문 이슬람 문화의 정수이기도 합니다. 마울리두르 라술이 열리는 날, 브루나이의 거리엔 북소리도, 광고도 없습니다. 대신에는 낭송의 울림, 행진의 발걸음, 자선의 손길, 그리고 기도의 숨결이 도시를 감쌉니다. 사람들은 말없이 미소 짓고, 함께 걷고, 함께 나누며, 예언자가 걸었던 자비와 사랑의 길을 따라갑니다. 그 길 끝에는 무함마드의 가르침이 있고, 그 안에는 브루나이라는 국가의 영혼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