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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너머의 진짜 얼굴, 도미니카 연방의 ‘마스 도미닉’

by clickissue 2025. 7. 26.

가면 너머의 진짜 얼굴, 도미니카 연방의 ‘마스 도미닉’

도미니카 연방의 ‘마스 도미닉(Mas Domnik)’은 매년 카니발 시즌에 열리는 가면 축제로, 아프리카의 정령 신앙, 프랑스 식민 문화, 원주민 전통이 결합된 카리브해 특유의 정체성이 반영됩니다. 화려한 의상과 가면 퍼레이드, 가사속 정치풍자, 드럼과 칼립소, 독립국가로서의 자긍심이 뒤섞인 강렬한 민속문화 행사입니다.

노예의 언어로, 자유를 노래하다

‘마스 도미닉(Mas Domnik)’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도미니카 연방(Dominica)의 카니발 시즌에 열리는 이 행사는 식민지 시대의 상처와 저항, 공동체의 회복력을 화려한 퍼레이드와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시킨 문화적 선언이자 사회적 연극이다. ‘마스(Mas)’는 ‘마스크(Mask)’에서 유래한 말로, 이 축제의 핵심은 ‘가면을 쓰되 진짜를 보여주는 것’이다. 카리브해의 많은 섬들이 그렇듯, 도미니카 연방 또한 유럽의 지배를 받았고, 아프리카계 주민들의 뿌리는 대서양을 건너 끌려온 노예에 있다. 그러나 그 억압의 역사 속에서도 문화는 살아남았고, 오히려 그 문화는 가면과 노래, 리듬을 통해 현실을 조롱하고 저항하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마스 도미닉’은 그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발전한 축제로, 매년 사순절 전 카니발 시즌에 도심 전체를 열광시키는 퍼레이드와 공연, 전통의상 행진, 노래 대회, 댄스 배틀 등으로 구성된다. 축제 기간 동안 도미니카는 “민중이 진짜 주인인 나라”가 된다.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되며, 거리마다 북소리와 춤, 가면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여기엔 왕도 없고 귀족도 없다. 오직 시민과 민중,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가면들만이 존재한다. 이 가면은 단지 얼굴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라, 침묵당했던 진실을 외치는 목소리다.

색, 소리, 움직임 – 해방의 미학

‘마스 도미닉’의 핵심은 퍼레이드다. 축제 첫날, 각 지역 공동체는 수개월 동안 준비한 가면과 의상을 입고 거리에 나온다. 의상은 천 조각, 깃털, 거울, 금속 조각, 형광 천 등으로 이루어지며, 그 형상은 정령, 동물, 역사적 인물, 심지어 신화 속 존재까지 다양하다. 이를 통해 공동체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기억, 저항의 서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퍼레이드에는 종종 풍자적 가면들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서양의 경찰복을 입고 가짜 수갑을 찬 인물, 백인 귀족 복장을 한 인형, 거대 기업 로고를 붙인 돈자루 형상의 탈 등이 눈에 띈다. 이는 오늘날의 권력과 자본, 불평등에 대한 직접적인 조롱이자 해방을 향한 욕망의 표현이다. 음악 또한 이 축제의 심장이다. 전통 드럼인 ‘부와부이(Bwa Bwi)’와 함께 레게, 칼립소, 주크(Zouk), 부요(Bouyon) 리듬이 밤낮없이 울려 퍼진다. 특히 ‘칼립소 대회(Calypsonian Battle)’는 참가자들이 사회적 문제나 정치적 현안을 재치 있는 가사로 노래하는 자리로,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중요한 창구다. ‘주발레(‘Jouvert’)’라는 새벽 행진은 어두운 새벽에 진흙, 페인트, 기름 등을 온몸에 바른 참가자들이 광장에서 시작해 도시를 행진하는 의식이다. 이 전통은 흑인 노예들이 밤에 몰래 축제를 벌였던 역사에서 유래했으며, ‘어둠 속 자유’를 상징한다. 이 퍼포먼스는 매우 원초적이면서도 감정적이며, 축제의 정신적 정점을 이룬다. 또한, 여성들이 주도하는 ‘퀸 퍼레이드’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각 지역의 여성 리더들이 전통 의상과 함께 등장하여 여성의 역할과 미를 기리는 장면으로, 여성성, 리더십, 공동체의 자긍심이 어우러진 순간이다. 이 퍼레이드는 단지 미인 대회가 아니라, 문화의 대변인으로서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자리다.

가면 아래 살아 있는 민중의 목소리

‘마스 도미닉’은 도미니카 연방이라는 작지만 강인한 섬나라의 집단 기억이다. 이 축제는 단지 흥겨운 축제가 아니라, 식민의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속에서 공동체가 자신을 회복하는 의식이며, 문화를 통한 정치적 선언이다. 가면을 쓴다고 진짜 얼굴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은 그 가면 뒤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도미니카 연방의 시민들은 이 축제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조망하며, 미래를 노래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그들은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는다. 지금도 해마다 수만 명이 이 섬에 모여 이 축제에 참여한다. 관광객이 늘고 상업화의 유혹도 크지만, 도미니카 사람들은 여전히 이 축제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가면은 화려하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진지하다. ‘마스 도미닉’은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카리브의 바람 속에서,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북소리와 노래, 가면과 춤으로 흘러가고 있다.